세계일보

검색

켜켜이 쌓이고 얽혀… 에로티시즘을 엿보다

입력 : 2018-09-01 03:00:00 수정 : 2018-08-31 19:43: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허욱·조나라 2인의 ‘겹침’展
‘폭염’(暴炎)도 ‘정염’(情炎)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한반도를 펄펄 끓게 한 111년 만의 40도 불볕더위 속에서도 관람객을 줄줄이 불러들이는 전시회가 마음을 끈다. 서울 서촌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9월 15일까지 열리는 허욱, 조나라 작가 2인의 ‘겹침: They overlap each other’展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조형적 전개를 모색하는 두 작가가 에로티시즘을 ‘겹침’이라는 작업방식으로 펼쳐낸다. 작가 허욱은 하나하나 도려낸 캔버스를 겹쳐 쌓아 올려 다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온 첨첨(添添)작업의 누드 연작 13점을 선보인다. 들어가고 나감이 연속되는 실과 바늘 작업으로, 교차되고 겹쳐지는 색실을 통해 교감하는 남녀의 에로틱한 형상을 직조해내는 조나라 작가는 ‘아노말리사’ 남녀시리즈 10점을 내걸었다.

허욱作 ‘첨첨’ 누드 연작 1
#허욱: 겹치기?겹쳐지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그간의 연결하기-연결되기, 이루기-이루어지기, 되기-되어지기, 놓기-놓이기, 쌓기-쌓이기, 겹치기-겹쳐지기 등의 의미를 내포하는 ‘Support-Supported’에 기반을 둔 채 작업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항의 문제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겹치기-겹쳐지기다. 또한 완결된 이미지가 아닌 작업과정인 ‘첨첨(添添)’을 관조하는 것이고 이는 변화의 한 단계로서 대중에게 다가간다.

첨첨은 ‘계속 더하고 더하다’는 뜻이다. 경계에서 또 다른 경계까지 선으로 그어 분할, 해체하고 다시 결합, 조합, 그리고 첨첨하는 것이다.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순간순간에 형성하고 순환하는 과정이 허 작가의 작업이며 ‘첨첨’으로 대변된다.

작가는 말한다. “그림이 아니라 건축적인 회화-회화적인 건축, 즉 오브제적인 회화 -회화적인 오브제라고 일컫고 싶다.” 
‘겹침: They overlap each other’展 포스터.
#조나라: 인간을 향한 치유의 바느질

엉킨 실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관능’이 배어나고 마침내 욕정을 일깨운다. 두 남녀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는 듯, ‘관음’(觀淫)의 즐거움도 함께 안겨준다. 작가 조나라의 작품 ‘아노말리사(Anomalisa)’ 이야기다. 작가에게 실과 바늘은 곧 붓이자 물감이다. 그림을 그리듯 회화를 직조해낸다. 바늘은 구멍을 내고 실은 그곳을 채운다.

한 땀 한 땀 반복되는 행위로, 실은 얽히고설켜 중첩되면서 켜켜이 쌓여간다. 구상적 이미지의 이면은 어느덧 추상적 이미지로 채워진다. 작업을 행하는 면은 형상이 드러나고 그 이면에는 그 ‘흔적’으로 또다른 이미지가 생성된다.

작가의 관심사는 ‘인간’이다. 그의 작업 키워드는 ‘관계’ ‘내면’ ‘연결’ ‘상처’ ‘이례적’ ‘변칙’ ‘연속’ ‘흔적’ 등이다.

섬유공장을 40년 넘게 운영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한 작가에게 실이란 익숙하고 친근한 재료다. 그의 작업에서 사용되는 실은 단순히 실이 지닌 재료로써의 사용을 넘어, 관계와 관계를 꿰매 하나로 엮어내는 일련의 결합과정을 뜻한다. 작가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과 인간관계에서 마주하는 내면성, 다면성, 이면성을 표현하려는데 이 과정에서 두 남녀의 형상이 등장한다. 
조나라作 ‘아노말리사’
캔버스의 앞뒷면을 종횡하듯 어지럽게 수놓아지는 바느질의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실의 흔적 너머로 두 남녀가 하나의 결합체처럼 얽혀 있는 형상은 관능적인 에로티시즘을 만들어낸다.

조나라는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실은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을 결합시킬 때 사용되어 왔다. 상처를 봉합 때 쓰이기도 한다. 나의 작업에서 인간의 살(표피)을 꿰매는 행위는 본인 스스로에게 강한 치유의 느낌을 준다.”

최신영 큐레이터는 “미켈란젤로, 로댕, 밀로 등 전대 작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에로틱한 주제를 다뤄 왔다”며 “이번 전시는 그 모티브만 보았을 때 국내에서는 아직 터부시될 수 있는 관능적 에로티시즘으로 해석되기 쉽지만, 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욕구, 상처, 치유 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여러 각도로 다양하게 주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