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무산이 비핵화와 남북정상회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무산으로 오히려 문 대통령의 역할이 더 커진 게 아닌가 싶다”며 “북·미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막힌 곳을 뚫어주고 북·미 간 이해 폭을 넓히는 데 촉진자·중재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졌다는 게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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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긴급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왼쪽)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북한 관련 회의에서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 두 번째부터) 등과 대화하고 있다.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캡처 |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포장한 것이다. 그는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북·미관계 개선의 촉매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렇더라도 내달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문 대통령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심 청와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시킨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 관저로 관계부처 장관를 긴급 소집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청와대에선 임종석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정부에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이 참석해 2시간 동안 북·미 비핵화 협상 상황에 대한 부처별 보고 및 종합적인 상황 판단이 공유됐다. 또 향후 북·미 관계 및 우리 정부 대책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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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 7월 7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의 북·미 고위급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평양=AP연합뉴스 |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에 따른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는 쉽게 예단이 어렵다. 하지만 당장 이번주 내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문을 열기로 한 정부의 계획은 어그러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의겸 대변인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과 관련한 한·미 정부의 상황인식을 위해 긴밀히 소통·협의하는 등 공동대응을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라며 “그런 구도 속에서 남북연락사무소 문제도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우리 정부의 독자 행동이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은 연락사무소 개소에 필요한 대북 물자 반입과 관련해 미국과의 대북제재 협의가 난항을 겪는 분위기에서도 감지된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공동연락사무소에 석유와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유엔 제재 위반인지를 묻는 말에 “제재 위반인지 아닌지 분명히 들여다보겠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핵 해결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는 말씀을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 비핵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과속을 경계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발언으로 해석됐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진전된 합의가 나오지 않으면 트럼프의 (한국정부에 대한) 은근한 원망이 시작될 것”이라며 “만약 우리 정부 속내가 비핵화와 무관한 남북 관계 진전을 바란다면 국내외적으로 솔직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차 연구위원은 “노무현정부 때 한·미 관계가 때로 냉각되면서도 깨지지 않았던 까닭은 당시 정부가 솔직하고 투명했기 때문”이라면서 “한·미는 한길이라고 외치면서 뒤통수를 치는 듯한 행태가 지속되면 불신과 경멸만 쌓인다”고 지적했다.
김민서·박성준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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