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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박물관이 복제본 전시하는 까닭은…

입력 : 2018-08-25 03:00:00 수정 : 2018-08-24 20: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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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 유물 반환 거부한 英 보란 듯/그리스 “본래 자리는 이곳” 상기시켜/과거란 시간을 담고 현재를 만든/유럽 박물관·미술관 29곳 소개/
작품이 품은 다양한 역사 들려줘
통합유럽연구회 지음/책과함께/2만2000원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통합유럽연구회 지음/책과함께/2만2000원


박물관의 시간은 뚜렷하게 과거로 향한다. 전시된 수많은 유물을 보며 관람객들은 쉽게 찬란했던 옛날을 떠올린다. 그러나 과거란 오로지 흘러간 시간으로만 남지 않는다. 현재를 만든 기초이자, 미래를 그려보는 단초다. 박물관이 전하는 과거 역시 마찬가지다. 박물관은 수많은 과거를 통해 치열하게 현재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은 신석기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아크로폴리스(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도시문명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높은 지대)와 그 주변에서 벌인 아테네인들의 역사적 행위를 대변하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인류가 이룩했던 가장 찬란한 고대문명을 증언하는 이 박물관의 4층 파르테논 전시실은 “유명 박물관에서는 사실상 금기시하는” 복제본을 전시하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인 토머스 엘긴이 가져간 파르테논의 조각을 본뜬 것이다. 20세기 후반 파르테논 유물 반환 협상을 할 때 영국은 그리스에 마땅한 전시공간이 없어 돌려주기 어렵다고 주장했고, 그리스는 이 박물관을 지어 대응했다. 또 전시실 북쪽에 면한 유리창을 통해 파르테논 신전을 포함한 아크로폴리스의 전경을 조망하게 해 파르테논의 조각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상기시킨다. 결국 “고대 그리스 예술가의 작품들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와 그리스 문화의 맥락에 맞는 동일한 전시공간에 채워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파르테논 전시실에는 영국에 약탈당한 유물의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다. 대형 유리창 너머로 파르테논 신전을 볼 수 있게 해 약탈된 문화재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독일 본의 독일역사의 집은 1994년 개관을 전후해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헬무트 콜 당시 총리가 “1945년 이후 독일사, 즉 우리나라 및 분단된 민족국가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수집하고자 한다”며 건립 계획을 밝혔을 때 집권 여당인 기독민주연합의 업적을 전시하려 한다는 의심을 샀다. 박물관, 특히 현대사를 다루는 박물관은 “현실정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체제나 집권세력의 ‘용비어천가’를 제작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콜 총리는 이런 비판을 수용해 “역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물음에 하나의 영원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답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사상적·정치적 자유의 한 조건”이라며 독일역사의 집이 다양성과 개방성에 기초한 역사상을 제시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지켰다. 이런 독일의 경험은 “정권의 역사관으로부터 여전히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사박물관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박물관을 구현하다 호된 비판에 직면한 사례도 있다. 네덜란드 국립해양박물관은 2007∼2011년 휴관하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다. 이때 어린이 관람객의 눈높에 맞춘 게임공간을 조성하고, 바다와 마주한 삶 속에서 네덜란드를 발전시켰을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미래를 강조한 이런 변화는 박물관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만들어 놀이동산으로 변하게 했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독일의 현대사박물관 중 하나인 베를린 눈물의 궁전에서 한 소녀 관람객이 전시품을 감상하고 있다.
책과함께 제공
유럽의 주요 박물관, 미술관과 유물·작품, 그리고 그것에 담긴 유럽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24명의 학자들이 29개의 박물관, 미술관을 소개한다. 많은 곳을 다루고 있어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재미는 덜 하지만 박물관, 미술관이 지닌 다양한 특성과 만날 수 있다. 유럽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접하는 재미도 책이 가진 미덕인 듯싶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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