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추진하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정전협정 체결 65년인 올해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한 상태이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한, 미국, 중국과 종전선언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여당은 종전선언의 조기 추진과 이에 대해 야당의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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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락 국민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국제 정치학 |
상식적으로 ‘선언’만으로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면 왜 각 나라가 그렇게 많은 전쟁을 치르고, 모든 국가는 대규모 군대를 유지해 대비하겠는가. 1991년 12월 13일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함으로써 무력 불사용과 불가침을 약속했고, 1991년 12월 31일에는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10년 3월 26일 서북도서 인근 해역에서 일어난 ‘천안함 폭침’이나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군부대와 민가에 150여발의 포격을 가한 ‘연평도 포격’에서 보듯이 북한은 계속 도발을 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수소폭탄 실험마저 했다. 이를 보듯 ‘완전한 비핵화’ 이행에 대한 확실한 보장장치가 없는 한 어떠한 선언도 의미가 없다.
북한이 진정 한반도의 평화를 바란다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체결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핵무기를 폐기하고, 도발을 자제하고, 남한과의 교류· 협력에 진실로 응하면 된다. 그럼에도 북한이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협정을 구상하는 것은 6·25전쟁 종결을 공식화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시키고, 주한미군과 한·미연합 대비태세의 명분을 약화시키기 위한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를 아는 미국이 호응하지 않으니 종전선언이라면서 부담 없이 합의하라고 유도하는 것이다. 이어 합의 후에는 전쟁이 종결됐다고 해놓고 왜 유엔군사령부, 주한미군, 한·미동맹을 유지하느냐고 미국을 채근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 국민의 상당수도 이에 동조하여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면서 남한 내 국론분열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이 한국을 떠나면 북한은 그들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6·25전쟁이 휴전상태로 65년간 지속돼 온 것은 종전선언문을 작성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더 나은 평화가 확실해질 때까지 현 상태의 평화라도 보장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휴전협정도 ‘준(準)평화조약’으로 볼 수 있고, 현 상태가 평화상태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국가안보는 인간의 생명과 같이 요행을 바라거나 도박할 수 없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안이다.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면서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양식 있는 정치인이라면 ‘종전’이나 ‘평화’라는 용어에 현혹되기 이전에 북한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휴전협정,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DMZ)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국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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