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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세상에서 발버둥… 남루함만 남은 밑바닥 인생

입력 : 2018-08-24 03:00:00 수정 : 2018-08-23 20: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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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고광률 ‘복만이의 화물차’ 펴내 “저에게는 두 가지 소신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외쳐야 한다는 겁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인간이 아니죠. 또 하나, 가엾은 사람을 보고 연민을 느끼지 않으면, 긍휼함을 느끼지 않으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긍휼과 부끄러움으로 쓴 글들입니다.”

소설가 고광률(57·사진)이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 ‘복만이의 화물차’(강)를 펴냈다. 삼류도 아니고 사류 이하 밑바닥을 관통하는 힘의 논리와 어쩔 수 없이 그 바닥을 참혹하게 관통해야 하는 생의 남루함을 아무런 치장 없이 민낯으로 보여주는 ‘하드보일드 리얼리즘’ 소설 6편이 장전돼 있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복만이’는 대학시절 입영집체훈련을 반대하는 데모에 참여했다가 독립운동했던 할아버지로 인해 공권력의 과도한 ‘배려’를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수전증에 걸렸고, 운동 이력 때문에 취직도 못한 그이는 결국 아내에게서마저 이혼 요청을 받는다. 위자료가 모자라 미루다가 산재보상으로 받은 2000만원만 미안해하면서 주고 이혼을 했다고 나에게 말한다. 그 녀석의 이혼한 아내가 ‘돈 많은 남자보다 지적인 남자가 좋다며 소크라테스 흉내를 낸’ 누이동생인 나는 전화기에 대고 하릴없이 울면서 외친다. ‘그래, 잘났다 이 새끼야! 야이, 개새끼야! 너 잘났다, 개애새끼야아!’

“삶이라는 게 엄중합니다. 발버둥치면서 살아야 하는데 발버둥치면서 살아도 잘 안 되는 삶이 있습니다. 발버둥치지 않으면 그나마도 없지요.”

첫머리에 수록한 ‘깊은 인연’은 구사대와 맞서는 농성 현장의 이야기다. 한 치의 감상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세계는 이밖에도 ‘포스터칼라’ ‘순응의 복’ ‘밥’ ‘영춘’에도 이어진다. 1987년 ‘호서문학’에 단편 ‘어둠의 끝’을, 1991년 17인 실천문학 신작소설집에 단편 ‘통증’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걸어온 고광률은 그동안 소설집 ‘어떤 복수’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장편 ‘오래된 뿔’을 펴냈다. 10년 만에 펴낸 이번 소설집은 내용을 받치는 비장하고 비정한 문체도 인상적이다. 비 냄새 진동하는 이런 문장은 어떤가.

‘비가 거셌다. 떨어진 비가 바닥을 때리고 다시 댓 뼘씩이나 튀어 올랐다. 길이 끓어오르는 튀김 냄비 같았다. …실과 빨랫줄과 손가락 굵기의 빗줄기가 난삽하게 뒤엉켜 내렸다. 게다가 번개는 딸꾹질하듯이 거침없이 밤하늘을 자꾸 찢어발기고 있었다. 하늘에서 바늘 쌈지가 터져내리는 것 같았다. 경박한 밤이었다.’(‘포스터칼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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