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에 등장하는 ‘복만이’는 대학시절 입영집체훈련을 반대하는 데모에 참여했다가 독립운동했던 할아버지로 인해 공권력의 과도한 ‘배려’를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수전증에 걸렸고, 운동 이력 때문에 취직도 못한 그이는 결국 아내에게서마저 이혼 요청을 받는다. 위자료가 모자라 미루다가 산재보상으로 받은 2000만원만 미안해하면서 주고 이혼을 했다고 나에게 말한다. 그 녀석의 이혼한 아내가 ‘돈 많은 남자보다 지적인 남자가 좋다며 소크라테스 흉내를 낸’ 누이동생인 나는 전화기에 대고 하릴없이 울면서 외친다. ‘그래, 잘났다 이 새끼야! 야이, 개새끼야! 너 잘났다, 개애새끼야아!’
“삶이라는 게 엄중합니다. 발버둥치면서 살아야 하는데 발버둥치면서 살아도 잘 안 되는 삶이 있습니다. 발버둥치지 않으면 그나마도 없지요.”
첫머리에 수록한 ‘깊은 인연’은 구사대와 맞서는 농성 현장의 이야기다. 한 치의 감상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세계는 이밖에도 ‘포스터칼라’ ‘순응의 복’ ‘밥’ ‘영춘’에도 이어진다. 1987년 ‘호서문학’에 단편 ‘어둠의 끝’을, 1991년 17인 실천문학 신작소설집에 단편 ‘통증’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걸어온 고광률은 그동안 소설집 ‘어떤 복수’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장편 ‘오래된 뿔’을 펴냈다. 10년 만에 펴낸 이번 소설집은 내용을 받치는 비장하고 비정한 문체도 인상적이다. 비 냄새 진동하는 이런 문장은 어떤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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