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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된꼬까리 여울, 굽이굽이 한숨, 흘러흘러 웃음… 늦여름에 만나는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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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26 07:00:00      수정 : 2018-08-22 21:16:02
“왜 이런 물건을 모으셨나요?”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기는 힘들다. “그냥 한 점 두 점 모으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냥 매력에 푹 빠져서요” 등 거창한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전시품.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수집광일 수도 있고, 요즘 말로 하면 ‘덕후’로 칭할 수 있는 이들이다.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본업이 됐다. 다른 이들의 관점에선 쉽게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지만, 그들에겐 인생의 전부가 돼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 분야 전문가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한 우물을 파니 그 분야에서 이들은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독특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전문가가 된 ‘덕후’들의 모습은 남들과 다르기에 관심을 끈다. 오랜 세월 이어온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다른 지역보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들었던 강원 영월이다.

영월의 독특한 지역색과 ‘덕후’들의 삶의 모습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자신만의 색깔이 누구보다 강한 이들은 동강과 서강이 감싸 흐르는 영월만의 독특한 풍광에 흠뻑 매료됐을 듯싶다. 강이라면 이제 인간의 손에 의해 정비돼 넓고 쭉 뻗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고, 유속이 느린 곳에 모래톱이 생기고, 빠른 곳은 파여 절벽을 이뤄야 하지만 그런 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동강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 색깔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풍광을 품은 영월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 온 이들의 모습이 덧입혀지고 있다. 자연의 비경뿐 아니라 꽁꽁 싸매놨던 ‘덕후’ 인생의 일부를 영월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동강을 찾은 이들이 신나게 래프팅을 즐기고 있다.
◆동강의 어라연, 서강의 한반도지형

동강을 빼놓고 영월에 대해 얘기하기는 어렵다. 동강 하면 영월, 영월 하면 동강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이맘때 친구, 동료와 래프팅을 하러 떠난 이들이라면 물에 빠져 맑은 동강 물맛을 한번쯤 느껴봤을 그곳이다. 래프팅을 하며 풍경을 즐기고, 빠른 유속에 배를 맡긴 채 스릴을 즐기는 강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올라가면 이런 동강의 풍광은 사치로 다가온다. 태백, 평창, 정선, 영월을 거쳐 남한강에 합류돼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흐르는 동강엔 목숨을 건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동강에서 남한강을 거쳐 한강을 통해 가는 물길은 강원도의 물자를 한양으로 가장 빨리 운송할 수 있는 루트였다. 그 중심에 뗏목을 수송했던 ‘떼꾼’들이 있다.

조선이 들어선 뒤 한양에 궁궐을 지으면서 원목 수요가 높아졌고, 강원도 목재가 한양으로 수송됐다. 궁궐 외에 다른 건물들도 지어졌고, 조선말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며 목재가 계속 한양으로 공급됐다. 이때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물길을 따라 보냈다. ‘떼꾼’은 목재를 엮은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강원 영월 동강은 조선시대 떼꾼들이 한양으로 목재를 운송하던 물길이다. 어라연부터 된꼬까리 구간은 동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품고 있다.
떼꾼들은 가을에 나무를 잘라 겨울을 보낸 뒤, 봄이 되면 강어귀로 나무를 내려보내 얼음이 녹는 4월부터 운송을 시작했다. 12∼15개 통나무를 하나로 엮은 뒤 기차처럼 연결해 뗏목을 만들었다. 뗏목 길이만 30m가 넘었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한양까지 옮기는 데 수량이 많으면 일주일이면 됐지만, 적으면 한 달 정도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 번 나무를 옮기면 당시 군수 월급의 세 배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한 번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대여섯 번 옮길 수 있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떼돈’의 어원이 떼꾼들이 버는 돈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목재 수송과정이 간단치만은 않았다. 바로 강 곳곳에 숨어있는 돌과 여울이 문제였다. 돌부리 걸리면 목재를 잃어버리고, 여울에서 물살에 휩쓸리면 목숨을 담보할 수 없었다. 특히 남한강에 이르기 전 동강에 이런 구간이 많았는데, 가장 위험했던 곳이 영월의 된꼬까리 여울이다. 물살이 심해 ‘되게 꼬꾸라진다’는 뜻을 품은 이곳은 떼꾼들의 무덤과 같은 곳이다.

기차가 다니면서 떼꾼들의 얘기는 옛일이 됐다. 지금 동강 상류에 있는 큰 바위 어라연부터 된꼬까리 구간은 동강을 대표하는 풍경이 됐다. 래프팅을 하면 어라연을 지나치긴 하지만 모습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 동강의 비경을 보려면 동강 물길을 따라 잣봉을 올라야 한다.

거운분교 맞은편 동강탐방안내소가 출발지다. 마차마을로 간 뒤 깔딱고개인 만지고개에 올라 어라연 방향으로 내려와 강을 따라 동강탐방안내소로 돌아오는 4시간 정도의 코스가 일반적이다.

어라연을 좀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반대로 강변을 따라 된꼬까리를 지난 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어라연을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이른다. 강원도에서 ‘뼝창’이라 부르는 벼랑 사이로 흐르는 동강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어라연은 엄청난 크기의 상선암과 그 뒤의 중선암과 하선암 등 삼선암을 말한다. 과거 어라사라는 절이 있어서, 물고기가 많아서, 상선암에 이끼가 차면 고기 떼 비늘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와 함께 비운의 왕 단종과 얽힌 얘기도 있다. 단종의 혼백이 떠돌다 어라연에 이르자, 물고기들이 단종의 혼백에 그만 갈 길을 가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이후 단종은 태백산으로 들어갔고, 산신이 됐다는 얘기다.

전국 곳곳에 한반도 지형이 있지만, 영월 서강의 한반도 지형은 우리나라와 형태가 가장 닮은 곳이다.
동강에서 어라연이 최고의 풍광이라면, 서강에선 한반도 지형을 꼽을 수 있다. 이 지형 때문에 영월군은 지명을 서면에서 한반도면으로 개칭했다.

어라연 가는 길과 비교하면 한반도 지형은 매우 평탄하다. 주차장에서 내려 10여분 걸으면 전망대에 이른다. 전국 곳곳에 한반도 지형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형태가 가장 닮은 곳이다.

한반도 지형 오른편 절벽지역은 동쪽으로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북쪽까지 이어져 있다. 서쪽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다. 최근엔 전망대 앞에 나라꽃 무궁화를 심었는데 이맘때 꽃이 활짝 핀다. 한반도 지형이 있는 선암마을에선 한반도 지형의 동해안을 출발해 서해안까지 1㎞ 구간을 갔다오는 뗏목체험을 할 수 있다. 

◆역사, 종교, 세계여행을 한곳에서

외국에 나가면 필수 코스처럼 들르는 박물관이지만, 국내에선 외면받는 곳이 박물관이다. 영월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외에 개인들이 모은 소장품을 전시하는 사립박물관이 14곳이나 있다. 군에서 운영하는 박물관까지 합치면 20여곳이 넘는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 전시된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의 전시품.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도 아닌 곳에 이렇게까지 많은 박물관이 있는 것은 사람이 떠났기 때문이다.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문을 닫은 학교들이 늘었다. 거미줄이 쳐진 학교와 복지회관 등의 건물이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던 물품을 수집하던 ‘덕후’들의 보물이 창고에 갇혀있다 영월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 전시된 세계 각국의 전통악기.
종교미술박물관 조각품 위에 잠자리가 앉아있다.
그림, 곤충, 지리, 악기, 아프리카, 종교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한평생 바친 그들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곳이다. 사립 박물관은 공립과 달리 작품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기 좋다. 영월의 사립 박물관 입장료는 한 곳당 성인 기준 5000원인데, 박물관 3개 이상 통합 발권시엔 50% 할인받는다. 박물관 세 곳을 간다면 입장료가 1만5000원이지만, 7500원에 둘러 볼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박물관에선 체험도 할 수 있다.

조선민화박물관에 전시된 민화.
사립 박물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은 2000년 개관한 조선민화박물관이다. 민화란 일상생활의 필요에 따라 그려진 소박하고 실용적인 그림으로서 유명 화가의 작품보다 서민의 생활상과 정서,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석환 관장이 사재를 들여 수집한 4500여점의 민화를 상설 전시한다. 해설사에게 요청하면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 커튼을 젖히면 어른들만 입장할 수 있는 춘화방도 있다. 매우 대담하고, 노골적이어서 한 그림을 오래 쳐다보기 민망하다.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전경.
아프리카미술박물관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지역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장소다. 아프리카 지역의 대사를 한 조명행 관장이 20여개 나라에서 수집한 500여점의 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가면을 비롯해 동물 형상의 부족 상징, 생활 용기, 장신구 등 아프리카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다양하다. 민속악기박물관에선 문화권별 악기를 전시하고, 직접 연주해볼 수 있다. 종교미술박물관에선 프랑스, 독일, 로마의 목공방에서 도제 시절부터 일해 온 작가가 동서양을 넘나들며 수집하고, 직접 조각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영월=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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