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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지방의원 40% 의정 경험 없는데 … 정부 ‘붕어빵 교육’ 그쳐

입력 : 2018-08-13 09:00:00 수정 : 2018-08-12 23: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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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등 조례 제정·개정 이해도 낮아/“발의율 낮아 단체장에 휘둘려” 자조도/ 정부 매년 지방의회 아카데미 열지만/ 기본교육 그쳐 임기 초만 ‘반짝 참여’
민간위탁·SOC 등 전문분야는 태부족
“4년 내내 조례 한 건도 스스로 제정하지 못해 밥값도 못하는 의원이 수두룩했습니다.”

서울의 한 기초의회에서 3선 구의원으로 활동한 전직 구의원 A씨는 “기초의회의 자체 입법 역량은 전적으로 기초의원 능력에 달려 있다”며 “1991년 기초의회가 부활한 뒤 30년 가까이 돼가지만 의원이 공부하지 않으니 기초의회의 입법 역량은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민선 8기 지방의회는 달라질 수 있을까. 본격적인 지방분권 시대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업무가 늘고 있지만, 지방의회의 역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의원의 의정 역량을 보여주는 의원발의 자치법규 비중은 여전히 지자체장보다 낮다. 당선된 지방의원 중 초선의원이 62%에 달해 다선의 지자체장의 업무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와 국회사무처에서 지방의원의 역량 강화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저조한 참여와 매년 똑같은 프로그램 구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 의정연수 전문기관이 전무해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초의회 조례 발의 5건 중 1건만 의원발의… 지자체 행정 이끌지 못하는 지방의회

1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방의회에서 2만2304건의 조례 제정·개정·폐지안이 발의됐다. 이 중 지방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5951건(26.7%), 지자체장이 발의한 법안은 1만6353건(73.3%)이었다. 단체장 발의 법안의 비중이 지방의원의 2.7배나 됐다. 지방의원의 주요 의정활동은 크게 지자체장 견제, 예·결산 심사, 자치법규 제정·개정·폐지 세 가지로 이뤄진다. 이 중 자치법규 제정·개정 발의안 수는 지방의원의 입법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전체 조례 중 지방의원의 발의 비중은 2015년 18.6%, 2016년 22.7%로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나 광역의회와 시·군·구 기초의회로 나눠 살펴보면 기초의회의 조례 발의 비율은 소폭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기초의회에서 발의된 조례 1만8910건 중 의원발의 비율은 3923건으로 20.7%에 불과했다. 광역의회의 의원발의 비율(59.8%)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2009년 기초의원의 조례 발의 비중이 24.2%까지 상승하기도 했지만 20%를 넘는 해는 일부에 그쳤다.

서울의 한 기초의회 재선의원인 B씨는 “초선으로 당선됐을 때 의정활동에 관한 선배 의원들의 조언은 ‘예산 불용률만 살펴보면 된다’, ‘그냥 하면 된다’는 정도에 그쳤고 조례 제정·개정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예·결산과 행정사무 감사도 중요하지만 지자체의 행정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조례 제정·개정에서 나온다”며 “의원발의가 낮으니 의회는 언제나 단체장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1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개원식에 참석한 의원들이 선서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의회와 226개 기초의회는 지난달 개원식을 마치고 의장단을 꾸리면서 본격적인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초선·행정 경험 없는 지방의원 느는데…임기 초반 반짝 인기 끄는 교육 프로그램

“공직은 실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실력을 펼치는 자리입니다. 끊임없이 연구해서 한 분야 이상에서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지방의회 아카데미’에 이성심 관악구의원이 강연자로 나섰다.

5선의 이 의원은 수도권과 강원도에서 온 지방의원 200여명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의정활동 전략’을 강의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초선으로 하반기 첫 행정사무 감사와 예·결산 심사를 앞둔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강의가 마칠 때마다 손을 들어 현장에서 느낀 고민을 질문했다.

지방의회 아카데미는 행안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에서 전국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의정활동에 필요한 지식과 문제 해결 역량을 키워 주려고 매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은 국회사무처 의정연수원과 함께 지방의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의정연수를 매년 하는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6·13 지방선거 후 처음 열리는 지방의회 아카데미와 국회사무처 의정연수원 교육 프로그램에는 812명이 참석한다. 전체 지방의원 3755명 중 22%가 두 기관의 교육에 참여한다. 지방의회 아카데미는 신청자 632명을 대상으로 서울과 전북 완주, 대구에서 3차례 나눠서 교육을 진행된다. 오는 21일부터 3일 동안 국회사무처 의정연수원이 주관하는 의정연수에는 180명이 참석한다. 국회사무처 의정연수원 프로그램의 경우 접수 시작 3분 만에 모집 정원 100명을 초과하는 바람에 80명을 추가 증원했다.


지방의회 아카데미에는 초선의원 579명(87%)이 참석해 초선의원의 높은 교육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민선 8기 지방의원 중 초선의원은 2322명으로 61.8%에 달한다.

곽미연 평택시의원은 “보험업계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와서 첫 업무보고를 받을 때 용어와 업무 내용이 낯설어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곽 의원처럼 지방의회에서 일해 본 적이 없는 의원은 전체 지방의원 중 40%에 이른다.

출신 직업별로 살펴보면 기초의원 2926명 중 40.6%(1189명), 광역의원 829명 중 36.9%(306명)는 의정활동과 관련 없는 직업군 출신으로 지방의회와 행정에 관한 기초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담당자들은 해마다 선거 첫해 반복되는 반짝 관심에 그치는 점을 걱정한다. 지방의회 아카데미의 경우 지방선거가 있던 2010년과 2014년 교육 참가자가 600명과 262명으로 많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2011년, 2015년에는 42명과 60명으로 참가자 수가 급감했다. 지방선거가 있던 연도를 제외하면 1년에 평균 50여명의 의원만 교육에 참여한 셈이다.

국회사무처 의정연수원의 지방의원 교육 참가자는 2014년 390명에서 2015년 364명, 2016년 231명, 지난해 159명으로 해마다 줄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지방선거 첫해에는 관심이 많아서 교육을 많이 신청하지만 선거 직전 해에는 참여자 모집이 어려워 강의 횟수와 정원 자체를 줄인다”고 말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지방의회 아카데미’에서 “지방의원의 역량이 강화돼야 행정과 국민의 사이에 난 틈을 메울 수 있다”며 “지방의원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고 주민만을 위해 일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매년 반복되는 붕어빵 프로그램…전문 연수기관도 없어

낮은 프로그램 참석률에 관해 재선 이상 지방의원들은 두 기관의 특색 없는 프로그램 구성 때문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두 기관 모두 기본적으로 예·결산 심사, 조례안 제정·개정, 행정사무감사 강의를 중심으로 매년 프로그램을 구성해 왔다. 임기 초반에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의정활동을 하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수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지방의회 아카데미만 보더라도 재선 이상 참가자 비율은 2014년 21.8%(57명), 2015년 26.7%(16명), 2016년 35.0%(14명)에 그쳤다.

재선 구의원을 거쳐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된 황인구 의원은 민간위탁사업 심사기법과 사회간접자본(SOC) 원가계산 검증 등 예산 검증이 쉽지 않은 전문 분야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의원은 “전문성 갖춘 의원이 한 명씩 각 상임위에서 자리 잡고 있으면 단체장과 담당 공무원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의원 역량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지자체 감시와 견제도 강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방의원의 수요에 맞는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문 연수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지방공무원과 국회의 역량 강화가 설립 목적인 지방자치인재개발원과 국회사무처에서 지방의원에 맞춤한 교육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지방의정연수원 설립법’을 대표 발의한 이용호 의원(무소속)은 “진정한 지방분권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과 감사 등을 책임지는 지방의회의 역량이 보다 강화해야 한다”며 “지방의원과 전문의원 사무처 직원 등 지방의회 구성원 모두의 전문성을 향상하려면 지방의정연수원(가칭)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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