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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행크스 지음/부희령 옮김/책세상/1만6000원 |
“요즘은 아무도 타자기를 가지고 있지 않고 칠 줄도 몰라요. 타자기로 친 편지들은 특별해 보이죠. 컴퓨터로 작성한 편지들을 가지고 와서 타자기로 다시 쳐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특별한 편지로 만들고 싶은 거죠. 밸런타인데이나 어머니날이 되면, 저는 여기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빙 둘러서 줄을 선 사람들이 내미는 종이들을 받아 타자로 쳐 줍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요금을 받았으면, 유명한 꽃집 주인들만큼 돈을 벌었을 겁니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 톰 행크스는 타자기 수집가다. 크리스마스 때나 새해엔 으레 타자기로 편지를 대신 써주느라 바빴다. 그는 1978년부터 타자기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엔틱 타자기’에서부터 조지 버나드 쇼가 직접 사용했던 타자기까지 100여대의 타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트루먼 대통령이 쓴 카포티도 있다. 로열, 언더우드, 올림피아, IBM, 해먼드, 레밍턴 등 타자기 종류도 가지가지다. 타자기마다 특징적인 글꼴이 있다. 추리소설에서 편지글을 보고 사용된 타자기 종류를 알아내는 것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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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파일럿으로 분한 톰 행크스의 모습이다. 영화는 비행 중 허드슨강으로 비상 착륙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았다. |
그는 2015년 이후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거의 매일 타자기로 글을 썼다고 한다. 여행을 하거나 휴가를 즐길 때도 거르지 않았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롤 모델이 되었다. 미국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있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는 행동 자체가 살면서 믿음을 지켜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 김연아 선수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연아는 “기본을 철저히 하고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톰 행크스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톰은 작가로서 성공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타자기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그 타자기로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톰이 쓴 소설집에는 열일곱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러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유산을 받아서 반은 백수처럼 생활하는 부동산중개인 남자, 1분1초를 허투루 쓰지 않는 활력과 성취 욕구를 지닌 사업가이자 유럽에서 이민 온 조부모를 둔 여자, 미국으로 밀항한 불가리아 이민자의 이야기나 2차대전 때 유럽에서 독일군과 싸웠던 참전용사의 이야기도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들 속에는 각기 다른 타자기가 등장한다. 톰은 타자기와 속삭이듯이 글을 썼다.

2013년 8월 뉴욕타임스에 톰이 기고한 에세이 한 토막이다. “타자기를 치다가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마치 마음의 대장간에서 글을 뜨겁게 다듬는 대장장이가 된 기분이다.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의 움직임과 감촉을 통해서도 즐거움을 맛본다.”
톰은 2014년 8월 아이패드용 타자기 앱 ‘행스 라이터’(Hanx Writer)를 출시하기도 했다. 타자기로 글쓰는 즐거움을 알리려는 열망에서다.
“미래의 제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마음으로 쓴 명상록을 읽게 하고 싶어요. 종이 한 장 한 장에 직접 한 글자씩 타자로 쳐서 써 줄 겁니다. 진정한 의식의 흐름을 기록한 종이들을 신발 상자에 잘 넣어둘 겁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인간의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할리우드 배우가 글쓰는 제주까지 지녔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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