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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현역 의원 소개 없이 청원서 못 내… 유명무실 국회청원제

입력 : 2018-07-28 16:34:11 수정 : 2018-07-28 16: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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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문턱 높아 이용 저조 / 의원 섭외해 문서로 직접 제출 규정 / 절차 까다로워 부정청탁 부르는 구조 / 힘겹게 접수해도 처리 ‘깜깜이’/ 20대 국회 본회의 통과 청원 3건 불과 / 19대선 심사 소위조차 한번도 안 열려 / '온라인 청원제' 추진하지만 / 24만건 접수 靑 국민청원 열기 발맞춰 / 與 의원 법안 발의했짐나 상임위 계류 중
“몇 번을 찾아갔는지 몰라요. 그 이후로 국회 쪽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사법시험 준비생 모임’ 대표였던 권민식씨는 2015년 사시 존치를 주장하며 국회에 청원을 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언짢다. 고시생들과 함께 1000여명의 서명을 받았음에도 청원서 제출부터 쉽지 않았다. 권씨는 “국회 청원을 하려면 국회의원의 소개가 필요한데, 평범한 사람들이 바쁘신 의원님을 쉽게 만날 수 있겠느냐”며 “어렵사리 연락이 돼도 ‘서류만 놓고 가라’고 한 뒤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권씨는 그해 9월 변호사시험법 부칙 개정을 촉구하는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뿐이었다. 권씨가 낸 청원은 이듬해 5월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지만, 지금까지도 그가 청원 내용과 관련해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

◆의원 허락 없으면 무용지물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해 의견이나 희망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청원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그러나 문턱 자체가 높고, 제대로 된 논의없이 폐기되는 청원이 많은 탓에 ‘민의의 전당’을 자부하는 국회의 청원 시스템은 어느새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2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총 147건의 청원이 접수됐고 이중 본회의에서 채택된 것은 단 3건에 불과하다. 16대 국회부터 통틀어도 불과 16건으로, 1년에 평균 1건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회 청원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 접근성을 꼽는다. 청원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서 접수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 국회법은 청원인이 현역 의원의 소개를 받아야만 청원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청원 전담 의원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 의원을 섭외해야 한다. 온라인 청원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직접 문서로 된 청원서를 작성해야 하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번거로운 절차 탓에 실제로 16대 국회 때 765건 접수됐던 청원은 17대 432건, 18대 272건, 19대 227건으로 꾸준히 감소추세다.

청원을 통한 민의의 전달 통로가 가로막힌 탓에 음성적인 민원과 부정청탁에 기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참여연대 이선미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의원을 섭외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고, 자료를 제출하려면 지방에서 힘들게 와야 하는데 사실상 국회가 청원을 하지 말라고 막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지난해 8월 문을 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벌써 24만여건의 청원이 접수됐다. ‘있는지도 모르는’ 국회 청원과는 딴판이다. 국민청원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어렵사리 청원해도 처리과정 ‘깜깜이’

힘겹게 청원서를 제출하더라도 대부분의 청원안은 국회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를 거치지 않고 사장되기 일쑤다. 국회에 접수된 청원안은 우선 청원 내용과 성격에 맞는 상임위에 배분된다. 이후 각 상임위의 청원심사소위에서 심의를 거쳐 전체회의와 본회의에 회부되거나, 본회의에 부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기각(불부의) 결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청원심사소위 개최가 연례행사에 그치는 탓에 제대로 심사 받을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19대 국회 당시 법제사법위원회는 32건의 청원안을 접수하고도 청원심사소위는 단 한차례도 열지 않았다.

청원 처리과정에 시간제한을 두지 않는 점도 청원인의 애를 태우는 대목이다. 국회법에는 청원이 상임위에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하도록 돼 있지만, 위원회가 임의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권한도 명시돼 있다. 청원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거나 청원심사소위가 기각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진행과정을 알려줄 의무도 없다. 청원인의 입장에서는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청원안이 최종 채택되더라도 여전히 실효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20대 국회에서는 지난해 1월과 3월 청원 3건이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됐다. 정부는 올해 초 각 1장짜리 처리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는 데 그쳤고 여전히 조치가 진행 중이다.

국회 차원의 개선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속도는 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지난 3월 현역 의원의 소개 없이도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국회 청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앞서 같은당 이학영 의원도 온라인 청원 도입과 함께 6주간 1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청원에 대해 공청회 개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제출했지만, 모두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獨 연방의회, 2005년부터 온라인 청원제 시행

우리나라 국민청원 제도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억울한 일에 대해 각 고을의 관청에 고발하거나 상소문을 올리는 방식이 존재하긴 했지만, 민의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청원을 법제화한 국내 최초의 시스템은 태종이 1401년 도입한 신문고(申聞鼓)가 꼽힌다. 신문고는 대궐 밖에 설치된 북을 말하는데, 억울한 사람이 북을 치면 임금의 직속 기관이 이를 접수해 5일 이내에 답을 주도록 했다. 신문고 폐지 이후에는 ‘징을 친다’는 뜻의 격쟁(擊錚)이 청원 통로로 활용됐다. 임금이 행차하는 길가에서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행렬을 멈추게 하고, 임금에게 하소연하던 제도였다.

현재는 헌법과 청원법에서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26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행법상 인터넷을 활용한 공개적인 여론수렴 방식의 청원에 대한 규정은 없다. 전문가들이 청와대가 시행 중인 국민청원 제도가 문재인정부 임기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온라인 청원권과 국가의 심의 의무를 제도화하는 추세다. 영국은 2015년 온라인 청원제를 도입해 서면과 온라인 청원을 모두 활용한다. 5명 이상의 지지만 얻으면 의회에 청원을 제출할 수 있다. 청원이 10만건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하원 본회의에서 논의하도록 의무 규정을 뒀지만, 대부분 그 요건을 채우기 전에 본회의 회부가 이뤄지고 있다. 정당 의석비율에 따라 총 11명의 하원 의원으로 구성되는 청원위원회는 정부의 조치를 요구하거나 관련 상임위에 청원 심사를 의뢰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영국보다 앞선 2005년 9월부터 온라인 청원제를 시행 중이다. 전용 홈페이지에 청원 내용을 올리면 개인이나 단체가 참여해 지지 서명이나 찬반 토론을 할 수 있다. 4주간 5만명의 서명을 받은 경우 연방의회 내 청원위원회가 공개회의에서 심의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각 주의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원제도와 별개로 백악관에서 온라인 청원을 받고 있다. ‘We the People’이라는 청원 사이트에 청원을 제출하고, 한 달 이내 1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게 되면, 그로부터 두 달 안에 백악관의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다.

박세준·김민순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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