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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군사정전협정 서명식 유엔군 측 수석대표인 윌리엄 해리슨 미국 육군 중장(왼쪽 서명자)과 공산군 측 수석대표인 남일 북한 육군 대장(오른쪽 〃)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6·25전쟁 군사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남북은 4·27 판문점선언(3조 3항)에서 연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회담을 추진토록 노력하자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종전선언은 화두로 급부상했다. 정부는 판문점선언대로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미국과 논의 중이고, 북한 역시 3차례 중국과 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종전선언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4·27 남북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들(남북)이 전쟁을 끝내는 일을 논의하고 있다. 아주 멋진 일”이라고 호응할 뜻을 내비쳤다. 중국도 “종전선언을 지지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화춘잉 외교부 대변인)고 밝혀 종전선언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종전선언은 최근 북·미 비핵화 고위급회담 이후 이견 노출로 벽에 부딪힌 분위기다.
북한은 고위급회담 직후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이 이미 합의한 종전선언마저 미루려 한다”고 비난했다. 북·미 간 종전선언을 명확히 합의한 공식 문건이나 합의문은 없다. 북한 외무성 담화에서 “종전선언을 하루빨리 발표할데 대한 문제는 조미 수뇌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더 열의를 보이였던 문제”라고 한 점으로 볼 때,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초기에 제공할 수 있는 체제보장 장치로써 종전선언에 양측이 공감했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국내 비판 여론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정부는 북한이 폐기 대상 리스트를 제출하거나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더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은 24일 “현 상황에서의 종전선언은 미국 내 조야의 반대가 매우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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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위 관계자들, 6·25 참전 희생자 묵념 지난해 7월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64주년 정전협정체결 기념행사에 참석한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등 관계자들이 한국전 참전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현 상황이 기싸움 측면도 있어 결국 미국 중간선거가 있는 11월 전에는 북·미가 이견을 좁히고 가시적인 비핵화 초기 조치와 종전선언을 성과로 도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북·미가 오는 27일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등 상징적 조치를 취하고 종전선언을 향한 중대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일 계기 유해송환을 앞두고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 미사일발사대)을 해체하는 정황이 이날 포착된 것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우리 정부로서는 북·미 협상을 속도감 있게 진행시키기 위해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해야 함과 동시에 한·미 간 긴밀히 한목소리를 내도록 요구받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북 정상회담 성과에도 종전선언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향후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이 과정에서 우리만 서두를 경우 한·미 간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이슈와도 연계돼 있다. 정전협정(제4조 60항)에는 정전협정 체결 후 3개월 내 정치회의 소집과 모든 외국 군대 철거를 위한 협의 등을 규정하고 있어서다. 이 조항은 북한이 중국군이 북한에서 모두 철수한 반면 미군은 여전히 남한에 주둔하고 있다는 점을 겨냥한 근거였다.
종전선언이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입구라는 점에서 주한미군을 둘러싼 논란은 언제든 제기될 수 있다. 북한은 대외 선전매체 등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국내에서도 전쟁 종료가 선언되면 주한미군 주둔 명분이 없다는 주장을 일각에서 폈다.
한·미는 종전선언이 성사돼도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와 성격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당시와는 바뀌었다는 점을 근거로 미군철수론을 정면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정전협정은 유엔군,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支援)군이 3대 당사자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미군은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참여했지만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후에는 이 조약이 주둔 근거가 됐으며, 1978년 한·미 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주한미군의 군사적 기능은 유엔군사령부에서 연합사로 사실상 완전히 이관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유엔사는 종전선언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해체되겠지만 주한미군 문제는 결국 한·미가 결정할 부분일 수 있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논리적으로는 유엔사는 해체될 수밖에 없어도 주한미군은 한국전쟁 당시에는 국제연합군으로 편성됐다가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에는 다른 틀이 생겨서 두 개의 틀로 존재하는 셈”이라며 “주한미군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주권국가로서 상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한·미 간 협의에서 한·미동맹, 한·미연합방위태세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다들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한·미연합훈련 중단 과정에서 한·미동맹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훈련 중단은 대화분위기 조성용이지 한·미동맹의 본질적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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