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노 의원은 재치있고 대중 친화적인 언변으로 큰 인기를 얻어 소수 진보정당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고 최근까지 정의당 원내대표로 활동하며 한국사회의 진보 담론을 주도했다.
포털 댓글 조작 의혹을 받는 ‘드루킹’ 김모씨 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노 의원이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61세. 노 의원의 삶과 정치, 운명을 가른 6개의 결정적 장면을 되돌아본다.
노 의원은 1956년 부산에서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웠고 수준급의 첼로 실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한 방송에서 어린 시절 첼로를 배운 것에 대해 “유복한 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악기 하나는 꼭 해야 한다’고 하셨고 소리가 내기 쉬워 보여 첼로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정치 초년생 시절에는 ‘첼로를 켜는 정치인’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진보 정치인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인지도도 올라가면서 첼로 얘기는 많이 줄었다. 재수해 경기고에 입학했다.
◆장면 2: 고교 시절 유신 반대 투쟁...“황교안 동문인 것 죄송”
노 의원은 경기고 재학시절 10월 유신에 반대해 박정희 대통령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경기고 동기 중에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교안 전 총리가 있다. 노 의원과 이 의원이 경기고 재학 시절 반독재 운동을 벌인 반면 황 전 총리는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아 대조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 “우리는 ‘창작과 비평’도 읽고, 함석헌, 백기완 선생의 강연도 다녔다”며 “퇴학 조치를 불사하고 유인물도 돌리고 데모도 했다”고 회고했다. 노 의원은 박근혜 정부 말기 탄핵 정국에서 “황교안 대행과 고교 동창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면 3: 용접자격증 따 노동운동...인민노련 사건 구속도
노 의원은 1976년 대학 입시에 낙방하고 곧바로 군 복무를 해 복무를 마친 뒤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에 충격을 받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회찬은 재학시절인 1982년 영등포 청소년직업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딴 뒤 서울 독산동 산업용 보일러 제조업체에 취직해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인천, 부천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단체들을 연합해 인천민주노동자연맹(약칭 인민노련)을 출범시키는 데 앞장섰다가 1989년 구속됐다. 만기 출소 후 대선에서 백기완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활동했고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거쳤다. 1997년엔 대중 역사서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을 쓰기도 했다.
노 의원은 국민승리21를 거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노 의원은 총선 당시 각종 토론 프로에 나와 촌철살인으로 유명 정치인이 됐다. 그는 그해 3월20일 한 방송사 토론에서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꺼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라고 촌철살인의 말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다.
◆장면 5: 삼성 X파일 ‘떡검’ 리스트 공개했다가 의원직 상실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한 이듬해 8월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결국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치른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곧이어 대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노 의원은 절치부심하던 끝에 20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이 아닌 경남 창원성산에서 악전고투 끝에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며 다시 진보진영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진보정치의 선두에 섰던 노 의원은 최근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게 됐다. 특검은 2016년 3월 경제적공진화모임(이하 경공모)이 5000만원을 인출해 노 의원에게 전달한 의혹을 특검법상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으로 분류하고 경공모 측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특검이 노 의원의 불법자금 의혹을 수사 중이란 보도가 나올 때마다 그는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노 의원의 혐의 내용은 자신이 걸어온 행적과 배치되는 것으로,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놓였다. 결국 그는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로 먼 길을 떠났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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