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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김형오 前 국회의장 “한국당, 물갈이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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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0 18:59:48 수정 : 2018-07-10 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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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前 국회의장 / 권력 사유화 침묵·계파만 챙긴 죄 등 / ‘한국당 7가지 죄’ 들어 보수 개혁 설파 / 절체절명의 순간 ‘필사즉생’정신 필요 / 민주당도 국정 주도하는 여당이 돼야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3년간 매달려 / 뜨거운 애국혼 젊은 세대가 느꼈으면 / 앞으로는 모두가 영웅 돼야하는 시대 / 정치권은 국민 신뢰 얻도록 노력해야
“백범 김구 선생의 살신성인의 자세와 희생·책임의 정신이 아쉽습니다.”

김형오(71) 전 국회의장은 지난 9일 “자유한국당이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각오로 임할 때 필사즉생의 여지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백범이 평생 마음에 새긴 경구 중 하나가 ‘벼랑에서 나뭇가지를 잡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며 그 잡은 손마저 놓아버려야 장부’라는 말”이라며 “지금 선거하면 한국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하는 처절한 각오와 심정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9일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의 수습 움직임과 관련해 “한국 정치사는 물갈이를 하라는 민심의 심판에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꾼 사례가 허다하다”며 “제도와 정치문화(행태), 행위자 모두 바꿔야 정치판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김 전 의장은 6·13 지방선거 직후 한 토론회에서 한국당 참패 이유로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죄 △권력의 사유화에 침묵한 죄 △계파 이익 챙기느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은 죄 △집권여당에 제대로 싸우지도, 대안 제시도 못한 죄 △교만과 오만, 막말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국민을 짜증 나게 한 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죄 △희망과 비전을 등한시한 죄 7가지를 꼽았다. 촌철살인 같은 정리에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후보를 찍은 지지자는 물론 등을 돌린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한국당의 혁신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김 전 의장을 찾아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의 식견과 경륜, 리더십, 무엇보다 망해가는 보수정당에 대한 애정을 갖춘 인사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매번 “나는 아니다”며 에둘러 고사의 뜻을 나타냈다고 했다. 왜일까. ‘정치 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김 전 의장을 백범(1879∼1949) 서거 69주기에 맞춰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아르테)를 핑계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의 차남 김신 장군(1922∼2016)의 요청으로 2015년 7월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의 부제는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백범 김구의 생애와 사상’이다. 백범이 1947년 펴낸 회고록·자서전 ‘백범일지’를 토대로 백범(白凡·평범한 사람)이 질문(Q)하면 김구 선생이 답(A)하고 김 전 의장이 추가 설명을 보태는(+) 형식이다.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은 직후 “요즘 같은 세상이야말로 백범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 아닌가요?”라는 출판사 대표 말에 용기를 내 내리 3년을 집필에 매달렸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가 ‘피로 쓰여진 책’이라고 부를 만큼 김구 선생의 삶이 여느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고 강조했다. 김구 선생이 “엄혹한 시대상황에 맞서 온몸을 던지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초지일관된 삶을 산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의 사상에 대해선 “투철한 국가관과 불타는 동포애, 민족 중심의 평화주의”라며 “백범만큼 생각(思)과 말(言)과 행동(行)이 일관된 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20세기 독립투사의 삶과 정신, 자세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김 전 의장은 “혼돈·혼미의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영웅을 그리워하지만 더 이상의 영웅은 나올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영웅이 돼야 하는 시대, 특정 지도자가 끌어가는 게 아닌 우리 모두가 영웅적 자질과 품성을 갖고 영웅적 행동을 해야 하는 시대”라며 “김구 선생의 책임감과 희생, 헌신이 21세기 현대사회 영웅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대개 보수진영은 해방 이후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진보진영은 김구 선생을 꼽는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전신)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이번에 책까지 낸 까닭은.

“김구 선생 같은 분을 보수, 진보와 같은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좀 시정이 돼야 할 것 같다. 백범이라는 사람의 일생일대 올곧은 삶을 당시와 오늘날 상황에 비춰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가 기본이 돼야 한다. 내가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엄혹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온몸을 던져가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초지일관된 삶을 사셨을까 하는 점이다.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무슨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세분화하는 것은 조금 사치스럽고 한가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자 출신으로 그간 ‘술탄과 황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등 많은 책을 냈다. 이번 책도 술술 쓰셨겠다.

“기념사업협회장 직을 맡고 난 뒤 얼마 안 있어 ‘술탄과 황제’를 펴낸 출판사 대표가 김구 선생에 관한 기획안을 갖고 찾아왔다. 그런데 내가 백범 전문가도 아니고, 명색이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인데 당신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대표가 ‘요즘 같은 시대에 김구 선생을 제대로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라. 마음이 흔들려 틈만 나면 선생 묘소를 찾아가고 ‘백범일지’를 들춰가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되물었다. 결국 선생의 민족사랑이나 리더십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

―예비독자들, 특히 젊은세대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 집안과의 극적인 만남, 김구 선생의 ‘멘토’ 고능선과의 교유, 애절한 가족사 등 많고 많다. 그중 백미는 백범과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관계를 묘사한 부분이다.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라 우리 선열들의 피로 이뤄진 나라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신들의 뜨거운 애국혼에 나 스스로 글을 쓰면서 울기도 했다. 오늘날 고뇌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자세,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유한국당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래도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온 한 축인데 요즘 보면 비판을 넘어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의장도 ‘한국당의 7가지 죄’로 알려진 강연도 하시고 한국당 비대위원장 제안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날 강연의 핵심은 한국당 비판이라기보다는 이 나라 정치판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사실 더 (세게) 이야기하려다가 그래도 전에 몸담았던 곳인데, 너무 짓밟으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차마 더 하지 못했다. 이번에 기념사업협회장 맡으면서 다시는 정치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했다. 이런 전제하에 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자면 요즘은 정치가 사라진 것 같다. 정치라는 게 없다. 가만히 보면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자기들 선거(총선)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선 안 된다. 물갈이를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는 꼴이다.”
―정치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다른 야당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야 하나씩만 지적하자면 여당한테서는 국정주도 정당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앞장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을) 이끌어나간 게 뭐가 있으며 청와대의 무리한 정책추진에 대해 제동을 걸어본 적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야당은 제발 국회 보이콧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틈만 나면 (요즘은 국회 본청 앞 계단인 것 같지만) 국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데 가관이다. 국회에서 3∼6개월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한 적 있는가. ‘일하는 국회 좀 만들어달라’는 대통령·정부 비판에 ‘일하는 국회는 정부 입맛대로 법률안을 통과시켜주는 게 아니다’고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는 야당 모습을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 나이로는 종심(從心·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이다. 정치권이나 인생 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선 세종대왕이 재위 7년 어전회의에서 했던 말을 소개하고 싶다. ‘위국지도(爲國之道) 막여시신(莫如示信)’.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들께 우리를 믿어달라고 호소하기에 앞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나이 얘긴데, 일흔이 되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공자 같은 성인군자뿐이다. 나 같은 사람은 70이 아니라 80이 되어도 법도에 어긋날지, 괜찮을지 항상 경계하고 삼가며 살아가야 한다. 됐제?”

대담=송민섭 정치부 차장

정리=이우중 기자 stsong@segye.com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경남 고성(71) ●부산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경남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5선(14~18대)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부산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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