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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체크] ‘성년후견’ 도입 5주년…인식 부족 문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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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1 19:47:16 수정 : 2018-07-01 17: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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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4년새 신청 2배 넘게 ↑ / 후견인들 애로 사항도 / 결격 사유 폐지 등 과제
복수의 성년후견인으로 활동 중인 A 변호사는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은행에 간다. 은행 창구에서만 후견 업무를 볼 수 있어서다. 인터넷 뱅킹 서비스는 ‘그림의 떡’이다.

더 큰 문제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 기관의 비협조적 태도다. A 변호사는 “후견인 지위, 권한 범위 등을 증명하는 서류인 후견등기부등본을 제시해도 체크카드 발급이나 정기 예금 만기 해지 같은 경우는 대부분 ‘믿을 수 없다’면서 바로 안 해준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는 성년후견 제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도입된 지 5주년이 됐는데도 제도에 대한 인식과 이해 부족에 따른 문제가 여전하다.

민법 개정으로 2013년 7월1일 성년후견 제도가 도입된 이래 법원에 접수되는 성년후견 사건은 매년 늘고 있으나 이용률이 그리 높진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1일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 법원의 성년후견 심판 청구 사건은 2013년 7∼12월 900건에 그쳤다가 △2014년 2605건 △2015년 3480건 △2016년 4173건 △2017년 5958건으로, 최근 4년간 2배 넘게 늘어났다.

성년후견 제도는 성년·한정·특정·임의후견 네 가지로 나뉘는데, 2013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성년후견이 개시된 경우가 8519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한정후견 1124건 △특정후견 861건 △임의후견 30건 순이었다.

성년후견과 한정후견, 임의후견 순으로 피후견인의 의사 결정 능력이 낮아 후견인의 권한 범위가 넓다. 임의후견은 불의의 사고 등으로 의사 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대비한 일종의 계약인데, 후견 사유가 생기면 법원 심판을 거쳐 개시된다.

법조계에서는 정보 부족 탓에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대상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단법인 온율의 배광열 변호사는 “치매 노인과 발달·정신 장애인만 해도 수십 만명인데 이용률이 10%도 안 된다”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한정후견을 받으면서 제도가 알려져 일반인들에게 ‘성년후견은 남의 일’이란 인식이 박혀버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후견인들의 애로 사항도 적지 않다. 후견인들은 특히 은행 이용 불편을 토로한다.

한울후견센터장인 송인규 변호사는 “(법인도 후견인이 될 수 있는데) 법인 후견 업무를 볼 때 통장을 만들려 해도 법인의 인감증명서와 사용인감계, 사업자등록증, 재직 증명서 등 구비 서류가 복잡하다”며 “성년후견인 같은 법정 대리인에게 공인인증서를 발급해주는 방법으로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법인 성민의 윤선희 성민성년후견지원센터장은 “제도 취지나 후견인 역할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후견인을 거부하는 가족이나 이해관계인들이 있어 힘들 때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피후견인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하는 법적 결격 사유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년·한정후견을 받는 사람의 권리나 자격을 박탈하는 각종 법률 조항이 약 3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일례로 성년·한정후견을 받으면 공무원 임용이나 담배제조업허가를 받을 수 없고, 영화 등 대중문화예술기획업에 종사할 수도 없다.

한국성년후견학회 회장인 박인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후견제도는 후견인이 의사 결정을 대신하게 돼있는데, 제도 취지에 맞게 피후견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특히 피후견인의 사회 활동을 제약하는 결격 조항이 정비돼야 제도가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별도의 전담 기관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법원이 후견인도 감독하고 있는데, 행정에 속하는 감독 기능을 보건복지부나 법무부로 옮겨야 한다”며 “영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성년후견 집행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기관 설립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족 후견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후견인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성년후견 제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피후견인에게 가장 적합한 후견 유형과 후견인의 선택, 후견인의 후견 업무 수행을 위한 적정한 제반 여건 조성, 법원을 비롯한 감독 기관의 적절한 개입과 감독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후견인의 선정부터 감독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법원이 관여하게 돼 법원의 역할과 책무가 훨씬 중요해졌다”면서 “전담 판사, (후견 개시 사건 등의 조사를 담당하는) 가사 조사관 등의 인력을 확보해 더 충실한 지원 체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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