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A씨는 공장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측에선 ‘화재 방지와 안전사고 예방’ 등을 이유로 들고 있으나 실시간으로 근무 태도를 감시하는 데 쓰인다는 뒷말이 파다하다. 기존 설치된 250여대에서 더 늘린다는 소문도 돈다. 하루종일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느낌은 여간 섬뜩한 게 아니다. 탈의실 바로 앞까지 설치된 CCTV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A씨는 “주 52시간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기존 관리·감독자들 수를 줄이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 같다”며 “감시를 더 강화하면서 일과시간엔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최근 CCTV를 둘러싼 노사 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매장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사사건건 개입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많이 주니까 그만큼 더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라 관리 인력을 CCTV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마저 감지된다.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서울고용노동청은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 종로구 소재 L사를 압수수색해 하드디스크와 CCTV 영상 등을 확보했다. 스티커·라벨 등 제조업체인 L사 노조는 지난 18일 “사측이 CCTV 등으로 노조원을 감시하고 협박하는 등 위법을 저질렀다”며 김영주 고용부 장관에게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는 진정을 제출했다.
지난 4월 삼성전자서비스에 이어 이달 18일에도 국내 한 중견 타이어업체가 CCTV를 이용한 감시 실태가 폭로돼 논란이 일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동안 접수한 CCTV 관련 제보는 모두 37건이었는데 ‘감시 갑질’이 23건(62.1%)으로 절반이 넘었다. 공익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당사자가 동의를 하더라도 노동 감시를 위해 CCTV를 설치할 순 없다”며 “CCTV 감시 갑질은 꾸준히 제보가 들어오는 분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실시되는 주 52시간 근무로 CCTV에 대한 기업의 의존도는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업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적인 활동을 금지하는 차원에서 감시수단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 침해 논란이 더욱 빈번해질 수 있다.
최근 CCTV 설치로 사측과 마찰을 빚은 현대중공업 노조는 강경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노조 한 관계자는 “사실상 ‘빅브러더’로 감시형 공장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런 환경에서 누가 제대로 일하겠느냐”며 “CCTV 설치가 곧 안전과 직결되진 않는다. 직원들 근태를 감시하고 관리인력을 줄이려는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창수·김청윤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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