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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위기에 빠진 중등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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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0 23:44:33 수정 : 2018-06-20 23: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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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설립 공약 없는 교육감선거 / 학부모 호주머니 걱정하고 / 학생 만족에 치우친 하향평준화
결국 우수 자원 모두 잃게 될 것
안병영씨가 첫 교육인적부 장관을 지내던 시절이다. 여자전문대 총장들이 교육부장관실에 들이닥쳤다. 학교명에서 ‘전문대’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졸업생들이 전문대 출신이라는 딱지 때문에 시집가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학력 물타기 시도였다. 이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 덕분에 전문대 이름을 지울 수 있게 됐다. 학교명만으로 2년제인지 4년제인지 구분이 어렵다.

졸업생들이 전문대 출신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결혼을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의 질 개선 여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20여년이 지났지만 탁월한 실적을 쌓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경쟁력이 더 향상됐는지도 의문이다. 경쟁력은 학생의 학습 능력과 교사의 열정, 그리고 교육시스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를 보면 중등교육에서도 물타기가 이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임기간에 해외 명문고에 필적하는 고교를 유치하거나 설립하겠다고 약속한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외국어고 자사고 과학고를 흔들겠다는 소리만 요란했다. 학생들을 특권교육 수혜자로 몰아 학습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교육 책임자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하향평준화 물타기의 전사처럼 보였다. 학생의 능력을 계발하고 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데 예산을 쏟아붓겠다는 후보도 없었다.

교육감 당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부모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든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무상으로 교복과 체육복을 나눠주고 유기농 식사를 제공하는 경쟁을 하고 있다. 학부모의 호주머니를 걱정하고,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을 없애는 게 교육감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1957년 소련의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은 수학 과학 교육을 완전히 바꿨다. 이전까지 미국은 초·중등 교육에서 어려운 기초학문보다 어린이의 창의성과 흥미를 중시했다. ‘스푸트니크 충격’ 속에 교육학자들이 흥미를 중시하는 교육이 기초과학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요구에 따라 미국은 초·중등학교에서 수학 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초등생 때부터 수학, 과학 영재를 골라내 별도 교육을 시키고 있다.

우리의 학교가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과거 전국 최고의 인재 배출 지역이라고 우쭐댔던 광주·전남지역의 2년 전 중학생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SNS 대화방에 가보면 이 지역 중학생들이 고교 배정을 놓고 고민하는 질문이 많다. 선배들의 답변을 보면 씁쓸하다. 면학 분위기가 엉망이고 명문대 진학률이 턱걸이 수준이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고, 동기 부여를 소홀히한 틈에 이렇게 됐다. 우수한 자원이 타지역으로 이주한 것도 이런 결과에 한 몫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학력 미달 교육을 책임져야할 인사들은 평가도구마저 없애버리는 등 자기합리화에 바쁘다.

어렵게 키워낸 인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의 한계이다. 한때 높은 인기를 끌었던 시내버스 정보제공 애플리케이션 ‘서울버스앱’을 개발했던 학생은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버스 도착시간, 정류장 정보를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앱이었는데, 개발자가 고교생이었다. 학생들은 우수한 조직에 몸담고 있다고 느낄 때 자부심은 물론, 소속감과 정체성을 갖게 된다. 동기 부여도 된다. 정체성이 약해지면 인재들은 미련없이 떠난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는 인재 유치에 기를 쓰고 달려든다. 이스라엘은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국가가 나선다. 교육부 산하에 해외인재를 유치하는 외청을 두고 박사급 인력이 귀국할 경우 연구실, 실험장비, 연구보조인력 스카우트 비용, 가족생활지원비까지 대준다. 싱가포르는 초등학생 때부터 우열반으로 나눠서 인재를 키우고 자긍심을 갖도록 한다. 경쟁력을 갖춘 학교 교육이 국가 리더십의 근간이 된다는 정치 철학이 있는 것이다. 한국 교육이 지금처럼 쉬운 길을 택하다가는 금세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누군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념을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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