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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변화되는 노동과 ‘페미니즘 백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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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19 00:18:22 수정 : 2018-06-19 00: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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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어나고 있는 게임업계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우선 작업자를 극단적 페미니즘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이하 메갈)로 정의하고 낙인찍는 데서 시작된다.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성 게임 유저들은 작업자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찰해 정치적인 발화나 행동, 후원은 물론 글의 공유와 관심글 지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동을 분석하고 재단하고 있다. 이 결과 메갈로 낙인찍힌 작업자의 작업물은 게임에서 삭제될 것이 요구되며, 많은 회사가 이에 호응해 작업물을 교체하는 한편 외주 계약을 취소하고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반격)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페미니즘의 이미지가 좋지 못한 방향으로 윤색되면서 메갈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여성단체에서 메갈리아의 순기능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페미=메갈’이라는 등식이 단단하게 자리 잡으며 혐오와 고정관념만 가속화된다. 이 때문에 페미니즘적 발화를 한 여성 작업자들은 메갈로 곧바로 치환되고, 메갈은 각종 혐오발언의 온상이니 이를 단죄하는 데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
이러한 유저들의 반발을 회사들이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면 백래시는 조기 진화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게임문화는 남성중심적으로 짜여져 있다. 모바일게임이 등장하면서 여성 유저의 비율 자체는 증가했으나, 게임의 매출이 확률형 아이템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서 여성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매출이 단품 판매나 월정액제 형태의 상품에서 주로 발생한다면 유저 수와 매출액 비중이 유의미한 비례관계를 보이겠지만, 부분 유료화와 확률형 아이템이 매출을 견인하는 현행 산업구조에서는 소위 고래 유저가 매출의 핵심이 돼 버린 탓이다.

산업 환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6년 기준 여성 종사자의 비율이 17.7%에 그쳤는데 이는 2010년 여성이 25.5%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크게 후퇴한 수치이다. 2012년 5만2000명을 넘어가던 게임 제작 및 배급 분야의 종사자가 2016년에는 3만4000명 수준으로 격감한 것을 고려하면 퇴직과 신규채용 시 성별로 인한 불이익이 더욱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직군 중 여성 종사자의 성비가 가장 높은 아트·그래픽 직군 종사자의 경우 전체 종사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줄고 있다.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가 필요해 아트·그래픽 직군의 비중이 높게 요구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종사자 비율이 감소했다는 것은 직고용은 감소하는 반면 외주화가 지속적으로 심화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거로 시계를 돌려 보면, 모바일게임시대 이후 일러스트가 대량으로 들어간 게임이 지속적으로 출시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풍의 캐주얼하거나 매니악한 일러스트를 저렴하게 그릴 수 있는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취약한 노동권 위에서 일해 왔으며, 외주라는 형태로 계속 주변화돼 이제는 가장 약한 고리로서 페미니즘 백래시의 집중적인 희생자가 되고 있다. 게임의 역사를 일구어 온 작업자들이 소비자의 불만과 괴롭힘을 사적으로 듣는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회사들은 전혀 연대나 보호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게임문화 관계자들의 자성과 정부 및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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