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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무시·편견 뜯어내고 예술로 존재하다

입력 : 2018-06-12 20:57:16 수정 : 2018-06-12 20: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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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술공간 이아, ‘부재의 기술’전 폐선 한 척이 전시장에 떡하니 놓여 있다. 그 위로 천장에서 영상이 쏟아진다. 폐선은 제주 신촌리에서 태풍으로 밀려와 방치된 것을 주워 온 것이다. 영상은 신촌리 주민들이 고동지은진미륵당을 모시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동지라는 어부가 낚시를 나갔는데 자꾸만 돌미륵만 걸려 올라와 버리기를 반복하다가 집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고 한다. 꿈에서 돌미륵이 나타나 자신을 모시면 마을을 풍요롭게 해주겠다고 하여 깜짝 놀란 고동지는 다시 바다로 나가 돌미륵을 건져 올려 마을의 당신(은진미륵)으로 모시게 됐다는 얘기다.

국적 불명의 폐선과 바다에서 영성을 일깨웠던 돌미륵의 만남은 정현 작가의 작품이 됐다. 바다를 건너온 돌미륵과 폐선은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의 표상이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관계의 역사를 들춰내 보여주는 듯하다. 오는 7월 22일까지 제주 예술공간 ‘이아’(센터장 이경모)에서 열리는 ‘부재(不在)의 기술(記述)’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전시는 이같이 규정되지 않았거나 무지나 무시, 편견 등에 가려진 것들에 몫을 부여하는 작업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우리는 왜 예술을 하는가. 미술품 전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에는 고승욱 김기민 김승영 김유석 김창겸 김태준 김해민 김해인 문소현 박선영 배수영 서성봉 손지훈 송은서 안형남 육근병 오봉준 이소영 이지유 정현 등 한국작가 23명과 포르투갈 홍콩 영국 폴란드 터키 중국 카메룬 등 외국작가 9명도 참여한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작가들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 신촌리 사람들의 당신(은진미륵) 모시는 모습을 담은 사진영상을 폐선 위에 비추고 있는 정현 작품. 폐선과 당신에게 새로운 사유(감각)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미디어아티스트로 이번 전시 총괄기획을 맡은 이탈은 “예술의 몫은 규정되지 않았던 사태에 침투하여 그것을 예술로 바꾸는 일, 예술에 배분되지 않았던 몫을 찾아 틈입하는 일, 그리고 일상에 보이지 않는 무지와 무시와 편견을 뜯어내는 사건의 창출에 있다”며 “감수성이라는 공통감각 위에 예술과 정치는 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유희를 넘어 세계의 이치를 꿰뚫는 성찰의 크기만큼 예술은 정치적일 수 있다”고 기획의 변을 밝혔다.

미학이 새로이 감각된 경험들을 분배하는 체계라는 얘기다. 그러기에 때론 위험하지만 풍요로운 사유의 움직임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발견들이 오늘의 예술가들에게 요청된다는 것이다. 랑시에르 감성론의 맥락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익을 계속 창출해야 하는 도시화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중국작가 뤼양의 작품도 이를 잘 말해준다. 그는 우리가 그저 건물의 호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시건설로 끊임없이 건설되고 파괴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황폐화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더라도 공기, 물, 대지의 변화를 걱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는 도시화의 무한 복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미세먼지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끝나지 않는 악몽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장 보이지 않는다거나 해결책이 없다고 그저 눈을 감고 ‘대안 없음’을 선언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행위라고 일갈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보이지 않는 것에 존재를 부여할 때, 다시 말해 몫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오도록 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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