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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氣 살리자] '훈육의 매'가 '학대의 매'로 변할 때…아이들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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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6 19:36:00 수정 : 2018-06-06 23: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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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근절되지 않는 아동학대 / 경각심 높아졌지만… / 잇단 충격적 사건에도 매년 증가 추세 / “말 안 듣는다” 작은 손찌검으로 시작 / 발길질·폭력으로 이뤄져 죽음 내몰기도 / 체벌이냐 신체 학대냐 아동복지법엔 ‘신체·정신적 고통 안된다’/ 현실에선 재판부 해석 따라 판단 제각각 / 모호한 기준에… 아동학대 ‘악몽’ 되풀이 / 해법은 ‘체벌금지법’? / 만연한 체벌에 유엔아동委도 제정 권고 / 전문가들 “사랑의 매 인식부터 바꿔야”/“처벌 강화보다 관련 체계 손봐야” 강조
2013년 일어난 2건의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울산 서현이(당시 8세) 사건과 경북 칠곡 소원이(〃 8세·가명) 사건이다. 두 아이는 각각 계모에게 심하게 폭행당해 숨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건 이후 아동학대 가해자의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됐다.

아동학대에 관한 국민의 경각심도 높아졌다. 6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01년 4133건을 시작으로 매년 수백건씩 증가하던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서현이·소원이 사건이 발생한 2013년에는 전년보다 3000여건이 늘어난 1만3076건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1만7782건으로 폭증한 데 이어 지난해는 처음으로 3만건을 넘어섰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파트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심하게 들려도 신고하는 분이 있을 정도로 과거와 비교하면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과거 아동학대를 남의 가정사로 생각하고 넘겼던 것을 여러 사건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졌지만, 아동학대 자체가 누그러들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아동학대 건수는 2만2157건(잠정)으로 2001년 2606건의 8.5배로 늘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실제 아동학대 건수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학대로 사망한 아동도 지난해 43명(잠정)으로, 조사가 시작된 2001년 이후 가장 많다. 

◆신체적 아동학대, 작은 ‘체벌’이 도화선

울산과 칠곡의 아동학대 사건 이후에도 크고 작은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는다. 그중 지난해 12월 전모가 드러난 고준희(당시 5세)양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고양은 사망한 지 8개월여 만에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 고씨는 “말을 잘 듣지 않고 밥을 먹지 않아 훈육 차원에서 때렸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30㎝ 자로 몇 대를 때리는 수준이었으나 점점 폭행의 강도가 세졌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고양의 부검 결과 갈비뼈 3곳이 부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 외에도 대부분의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죽음에 이르는 폭행을 하고도 ‘훈육’이었다고 선을 긋는다.

전문가들은 체벌에 관대한 한국사회의 문화 때문에 훈육이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울산·칠곡 사건의 경우에도 가해 부모가 폭행이 아닌 훈육을 위한 체벌을 했다고 주장한다”며 “감경받기 위한 의도도 있겠지만 훈육과 신체적 학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이유 중 가장 많은 것은 ‘양육 태도와 방법 부족’(35.6%)이었고,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및 고립’(17.8%), ‘부부 및 가족 갈등’(10.4%) 등이 뒤를 이었다.

◆학대? 훈육?… 모호한 경계

문제는 훈육 목적의 체벌과 신체적 아동학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폭력, 가혹 행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모든 신체적 폭력 행위가 아동학대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다.

A씨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성의 딸(당시 10세)을 회초리로 여러 차례 때렸다. 밖에서 놀다가 늦게 귀가하고, 숙제나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A씨는 훈육과정에서 필요한 징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계부인 B씨는 8살 된 아들이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회초리로 손바닥 등을 때렸다. 한자시험을 내고 틀린 경우에도 회초리를 들었다. 검찰은 B씨를 아동학대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B씨의 행위를 교육적 목적의 체벌로 인정했다. 항소도 기각됐다.

공혜정 대표는 “가령, 어쩌다 한번 때리는 것도 학대에 포함되는지, 손으로 때리는 것과 회초리로 때리는 것의 차이가 있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현재는 재판부의 해석, 가치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민법상의 ‘징계권’도 논란거리다. 민법 915조에는 ‘친권자는 보호 또는 교육을 위해 그 자녀에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징계에 관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인 이명숙 변호사는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영유아보육법, 아동학대처벌법에는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폭행은 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신법·특별법 우선 원칙에 따라 어떠한 폭력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다만 아직 대법원의 명확한 판례가 없고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체벌 행위는 훈육으로 인정하고 있어서 하급심에서도 여전히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체벌금지법, 다시 수면 위로

아동학대에 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체벌금지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도 다시 나오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03년과 2011년 한국 정부에 체벌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당시 “가정, 학교, 대안적인 보호 상황에서 체벌이 지속해서 만연해 있다는 것에 우려를 반복한다”고 밝혔다.

2015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됐지만 체벌의 세부사항과 단어를 명시하지 않고, 처벌 조항도 따로 규정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숙 변호사는 “훈육을 위해서는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은데 그렇게 되면 경계선 자체가 모호해진다”며 “인식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우선이지만 체벌금지법을 도입하는 것도 아동학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안동현 한양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아동학대 개념과 유형 연구’에서 “아동학대 행위 정도의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훈육, 부적절처우, 불법처우, 아동학대, 가중아동학대 등으로 분류해 아동복지법과 특례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권희경 창원대 교수(아동가족학)는 “무작정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 측면만 강조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아동학대 관련 체계를 손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어떤 식으로 아동학대에 관한 인식을 개선할 것인지, 피해 아동을 사건 이후 어떻게 보호하며 가해 부모를 어떻게 교화할 것인지, 원가정 보호 조치를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 등을 정부 차원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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