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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우리 헌법은 비로소 깨어났다”

입력 : 2018-05-26 03:00:00 수정 : 2018-05-25 20: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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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헌 이후 사실상 반신불수 상태 / ‘87년 헌법’으로 대전환… 법의 규범력 회복 / 시민 일상부터 국가 대사까지 ‘작동’ 시작 / 헌법은 규칙 아닌 원리… 해석 여지 많아 / 간통죄 4번의 합헌 거쳐 위헌 결정 나와 / 시대 따라, 국민 의사 따라 '변하는 생물' / 양건 전 감사원장, 헌법 연구 정리해 출간 / 최근 개헌 논쟁엔 "법조문 바꾸는 것보다 권위주의 문화 개선이 먼저 필요" 강조  
양건 지음/사계절
헌법의 이름으로/양건 지음/사계절

1792년 12월 11일, 프랑스 파리 국민공회의사당. 루이 16세가 의사당에 끌려 나왔다. 이미 8월 10일 민중봉기 후 국민공회는 왕권의 정지를 의결한 터였다. 왕은 모든 범죄혐의를 부인했고 대신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해를 넘겨 1793년 1월 14일 국민공회, 루이 16세의 표결이 행해졌다. 닷새에 걸쳐 모두 세 차례 표결이 이어졌다.

첫 표결에서 왕의 유죄가 가결되었다. 거의 전원이 찬성했다. 이어 둘째 표결은 왕의 상소 권리를 묻는 표결이었다. 3분의 2가량이 왕에게 상소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 세 번째 표결은 양형 문제였다. 1월 18일 끝난 양형 표결 결과 찬성 387대, 반대 334로 사형이 확정됐고, 사흘 후 콩코르드광장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1793년 1월21일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벌어진 루이 16세 처형 모습을 묘사한 그림.
세계일보 자료사진
장면을 돌린다. 2017년 3월 31일 오전 3시경. 전직 대통령 박근혜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서울중앙지법 영장 판사는 구속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 앞서 대통령 박근혜는 헌법재판소 판결로 대통령직을 잃었다.

 2016∼2017년 대한민국 서울은 1792∼1793년 프랑스 파리의 데자뷔였다. 시공을 달리한 2편의 파노라마는 모두 헌법의 이름으로 벌어졌다. 이렇듯 헌법은 중요하다. 하지만 헌법이 법인가라는 의문이 존재했던 적도 있었다.

이 책에서 양건 전 감사원장은 헌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우쳐 주었다. 국가를 지탱하는 최상위 법인 헌법이야말로 국민 각자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그의 생각을 담아냈다. 요즘 이슈인 개헌 등 헌법에 대해 알기 쉽도록 이끌어준다.

“1987년까지 현실에서 작동하는 헌법의 힘은 거의 없었다. 헌법이 지닌 법규범으로서의 규범력은 극히 약했다. 헌법이 과연 법인가라는 의문도 무리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헌법은 일상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정치권력의 세계에서 개헌문제가 거론될 때 간혹 눈길을 끌 뿐이었다. 1948년 제헌 이래 1987년 헌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법은 반신불수였다.”

양 전 감사원장은 “그러나 1987년을 기해 한국 헌법 역사는 달라졌다”고 평가한다. 그의 말대로 ‘87년 헌법’ 이후 헌법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살아 있는 헌법이 되었고, 헌법재판 결과에 따라 시민의 작은 일상부터 국가적 대사까지 그 향방이 바뀌었다.

여전히 권력의 사유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길 수 있었던 것도 분명 헌법이었다. 그러나 헌법은 수학 법칙처럼 명료하지 않다. 일반인이 어려워하는 대목이다.

이에 저자는 “헌법은 규칙이 아니라 원리”라고 했다. 규칙은 ‘대통령 임기는 5년’처럼 시비를 명확히 가릴 수 있지만, 원리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등의 추상적인 어휘가 대부분이다. 이는 사람에 따라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예컨대 간통죄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간통죄는 2015년 위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1990∼2008년에 네 차례나 헌법재판소에서 다뤄졌다. 재판관들이 똑같은 조문을 놓고도 해석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헌법은 시대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당대 국민 의사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건 전 감사원장은 “헌법은 국민 기본권, 즉 개인의 권리를 규정한 까닭에 추상적 어휘가 사용된다”면서 “헌법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리하며, 해석은 당대 국민의사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따라서 양 전 원장은 “헌법은 조항 자체만으로는 알 수 없고 유권적인 헌법 해석이 뒤따라야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서 “헌법은 제정뿐만 아니라 해석과 적용 역시 매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건국절 논란을 보면 분명해진다. 제헌 헌법 전문과 87년 헌법 전문이 모두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1919년인지, 1948년인지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현실적 측면을 강조하면 1948년 건국론이 타당한 것으로 보이고, 명분적·이념적 측면을 중시하면 1919년 건국론에 기울게 된다. 양 전 원장은 “건국 시점을 1919년과 1948년 중 어느 쪽으로 볼지는 법이 아닌 정치 문제이므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정치권의 논쟁거리 개헌에 대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면 잘못된 정치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원인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관한 헌법 조문을 바꾸는 것보다도 우리 사회 권위주의 문화의 개선이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헌법질서는 헌법전 조문 변경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개헌은 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 헌법질서의 새로운 정립이며 꾸준한 실행이다.”

아시아에서 근대적 의미의 헌법이란 어휘가 사용된 것은 일본 메이지유신 이후 1873년부터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1919년 4월 11일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의 헌법인 ‘임시헌장(臨時憲章)’에 이어 나온 ‘임시헌법(9월 11일)’이라고 저자는 밝혔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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