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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 미술감독은 무슨 감독일까?

입력 : 2018-05-26 14:00:00 수정 : 2018-05-25 15: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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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는 감독으로 불리는 사람이 참 많다. 그냥 감독 그러니까 영화감독도 있고, 촬영감독, 조명감독, 음악감독, 그리고 비롯해 미술감독도 있다.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는데 참여하는 감독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오늘은 미술감독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얼마 전 폐막한 2018년 칸영화제에서 기술부문 최고상인 벌칸상을 ‘버닝’(감독 이창동, 2018)의 신점희 미술감독이 수상한 것을 계기 삼아서. 

“미술감독은 영화 제작과정에서 무슨 일을 감독하는 감독일까?” 주변에 물어보면 대개 “그림을 그리나?”, “시각적인 것을 하겠지?” 정도의 자신 없는 답이 돌아온다. 미술감독은 무슨 일을 할까? 미술감독의 미술은 ‘아트(art)’의 번역으로서 미술, 예술 등 그 의미는 꽤 폭이 넓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미술감독은 시각적인 부문과 관련된 예술 활동, 창작 활동을 지휘하는 사람 정도가 되겠다. 

미술감독은 영화 분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연극을 비롯한 공연, 광고, 방송, 게임 등의 분야에서 ‘아트 디렉터(art director)’로서 특정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결과물로 완성되는 과정에 필요한 시각적 기획, 디자인, 설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 창작 작업을 책임진다.

영화 분야에서 미술감독은 ‘프로덕션 디자이너(production designer)’로 더 많이 불리는데, 영화감독의 영화적 컨셉과 의도를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 화면에 담길 영화 속 세상, 공간을 창조한다. 촬영감독이 카메라로, 조명감독이 조명으로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미술감독은 공간 창조를 통해 협업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집이 세트 촬영이라면, 딱 그 주인공의 집인 것처럼 디자인하고 제작해 야 한다. 제작된 세트 내부 역시 벽지와 바닥재 작업이 이루어져야하고, 가구와 소품 등이 채워져야 한다.

주인공 남녀가 만나는 길거리 로케이션 촬영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로케이션 헌팅 과정에서도 미술감독의 의견이 반영된다. 그리고 딱 그 상황에 맞는 길거리로 꾸며져야 한다. 눈이 쌓여있어야 한다면 눈처럼 보이는 것을 쌓아야하고, 1980년대 거리라면 그 시절 거리처럼 주면 간판, 버스정류장 표지, 벽보 등등이 설치되어야 한다.

미술감독과 영화감독과의 충분한 소통이 필수적인데, 영화 전체적인 시각적 특성은 물론, 각각의 공간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컨셉을 이해하고, 추가 의견을 내면서 실체화시키기 위해서 소통은 반드시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감독이 칙칙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주인공 방을 원한다면 그 ‘칙칙함’과 ‘우울함’이 실제 세트로 완성될 때까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 방의 구조, 벽 색깔, 소품 등등까지 ‘칙칙하고 우울한’ 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트 촬영이 많든, 로케이션 촬영이 많든, 요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든, 1980년대 초 광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든, 혹은 미래의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든, 미술감독을 중심으로 한 미술부의 역할은 늘 중요하다. 영화가 약 2시간 내내 무언가를 봐야하는 시각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커트 별로 대개 영화적 순서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촬영 과정에서, 영화 속 공간의 톤을 유지하는 것도 미술감독의 주요 업무다. 각각의 커트 속 공간은 예쁘지만, 그 커트들을 연결해 편집했더니 커트 별로 공간이 이질적이라면 현실감과 몰입도가 떨어지게 된다.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집, 그들이 늘 걷는 거리 등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가 된다. 그들의 갑갑한 현실이 실감나는 에피소드, 대사, 배우의 표정은 물로 그 배우가 앉아있는 의자, 그 의자 뒤 벽면에서도 느껴질 수 있다. 영화 속 공간은 캐릭터, 스토리 등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특정 느낌과 뉘앙스를 느끼게도 해준다.

이번 신점희 감독의 벌칸상 수상은 지난 2016년 ‘아가씨’(감독 박찬욱)의 류성희 미술감독의 수상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었다. 신점희 감독이 이창동, 이정향 감독 등과 여러 작품을 함께 했다면, 류성희 감독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과 주로 작업해왔다.

두 미술감독이 참여한 영화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신점희 미술감독의 작업 - ‘박사사탕’(감독 이창동, 1999),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감독 박흥식, 2000), ‘오아시스’(감독 이창동, 2002), ‘집으로’(감독 이정향, 2002), ‘역도산’(감독 송혜성, 2004), ‘댄서의 순정’(감독 박영훈, 2005), ‘밀양’(감독 이창동, 2007), ‘시’(감독 이창동, 2010), ‘오늘’(감독 이정향, 2011), ‘고령화 가족’(감독 송혜성, 2013), ‘연평해전’(감독 김학순, 2015) 등

류성희 미술감독의 작업 - ‘피도 눈물도 없이’(감독 류승완, 2002), ‘올드보이’(감독 박찬욱, 2003),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2003), ‘달콤한 인생’(감독 김지운, 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깜독 박찬욱, 2006), ‘괴물’(감독 봉준호, 2006), ‘마더’(감독 봉준호, 2009), ‘박쥐’(감독 박찬욱, 2009), ‘만추’(감독 김태용, 2010), ‘변호인’(감독 양우석, 2013),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2014), ‘암살’(최동훈, 2015), ‘아가씨’(감독 박찬욱, 2016) 등

각기 다른 개성으로 협업해온 두 미술감독이 창조해 낸 영화 속 공간들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아마 그 영화의 감동 지분 중 미술감독이 창조한 공간이 차지하는 지분이 꽤 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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