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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대비 못하는 공교육] 'SKY' 실적 쌓기 급급…최상위권 아니면 방치되는 아이들

입력 : 2018-05-24 18:55:58 수정 : 2018-05-24 22: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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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고교 정규교육
올 초 서울의 한 일반 사립고를 졸업한 재수생 권모(20)씨는 고교 3년 내내 내신 경쟁에 짓눌렸다.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서 떨어지고 들어온 친구가 많아 좋은 성적을 받는 게 빡빡했다. 학교는 1학년 때부터 야간자율학습(야자) 참여 기회를 매번 중간·기말·모의고사 성적순으로 100명에게만 준 뒤 3개 반으로 나눠 운영했다. 1∼30등은 A반, 31∼60등은 B반, 나머지는 C반 식으로. 반 배정은 시험이 끝날 때마다 수시로 바뀌었다. 과목별로 가장 잘 가르친다는 교사들이 A반에 야자 담당으로 배치됐다. 권씨는 “학교와 선생님들이 진학 실적을 의식해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야자 수업에 참여하려고, 특히 A반에 들려고 경쟁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그는 입시 비중이 높아진 수시 학교생활기록부종합(학종) 전형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교사들 눈에 잘 띄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100등 안에 못 든 대학 진학 희망자들의 처지는 딱했다. 사실상 방치된 채 혼자 알아서 입시 준비를 했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 문재인정부가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생활할 때 차별받지 않고 사교육에 기대지 않아도 될 ‘공정한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며 내세운 슬로건이다. 권씨 사례에서 보듯이 입시 문제만 떼어놓고 봐도 학교 현장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중 최상위권에 들기 어려운 대부분은 학교 도움을 받기 힘들다. 공교육에만 의존해선 입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교육회의와 교육부가 오는 8월 내놓을 2022학년도 대입체제 개편안에 대해 많은 교육 전문가와 당사자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종 비중, 평가 방식을 어떻게 하든 공교육 역량이 극소수 우수 학생에게 집중되고 초등·중학교 때부터 그 대열에 들어가려는 학생과 학부모의 치열한 경쟁 양상은 달라질 게 없어서다. 정부가 이른바 ‘서울 주요대학’ 중심의 입시 체계와 어쩔 수 없이 그 대학에 한 명이라도 더 넣으려고 발버둥칠 수밖에 없는 학교와 교사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고교별 입시관련 교육 역량 제각각

세계일보가 24일 종로학원하늘교육에 의뢰해 서울 25개 자치구 일반고의 주요과목별 평균 내신·수능성적 상위권(80점 이상) 학생 비율 등을 분석한 결과 지역·고교별 양극화가 뚜렷했다.

비율이 가장 높은 순으로 1∼5위 자리는 대부분 ‘교육 특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양천·노원구가 차지했다. 과목별로 수능 고득점자 비율이 최상위에 포진한 5개구(1∼5위)와 취하위 5개구(21∼25위)의 평균치를 비교하면, 국어와 수학(가형)의 경우 각각 29.4%와 14.5%, 50.8%와 24.8%로 2배가량 차이가 났다. 영어는 각각 37.3%와 13.0%로 3배 가까이 벌어졌다.

지역별 내신과 수능 수준 격차도 상당했다. 강남·서초·양천구 등은 내신과 수능 상위권 학생 비율 차이가 작거나 수학과 영어에선 오히려 내신보다 수능 성적이 더 나은 학생이 많았다. 이는 학교 시험 수준이 수능과 비슷하거나 더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수능 성적 최하위권을 비롯한 상당수 지역의 고교에서는 내신 고득점자 비율이 수능보다 훨씬 많았다. 이 지역의 적지 않은 학생이 학교 시험을 잘 봐 내신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정작 수능 시험장에서는 눈앞이 깜깜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의 한 일반고 진학담당 교사는 “진학에 관심없거나 웬만한 4년제 대학에 갈 실력 자체가 안 되는 학생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고교유형과 지역·학교별로 교육 여건, 교사 역량 등이 다 달라 당연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015학년도 수능을 본 같은 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중 국어와 수학, 영어 성적 상위 3등급 이내 비율을 살펴보니 한 지역에 속한 학교 중에서도 ‘학력과 교육수준의 양극화’가 심했다.

예컨대, 강남구의 상위권 고교로 꼽히는 A고는 3과목별 3등급 이내 재학생(최저 52.9∼최고 68.1%)과 재수생(〃57.8∼〃62.9%) 비율 차이가 5%포인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위권 고교인 D고는 재학생(최저 12.5∼최고 21.5%)과 재수생(〃37.2∼〃42.3%) 비율 격차가 무려 20%포인트를 넘었다.

이런 양상은 양천구와 성북구 등 다른 구의 상·하위권 고교에서도 비슷했다. 한 입시전문가는 “하위권 고교의 경우 졸업생의 수능 성적이 재학생보다 매우 높다는 것은 잠재력 있는 학생들마저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극소수 우수 학생 위주로 챙기는 학교들

일반고든 자사고든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 중 대다수가 내신 3, 4, 5등급 학생이다. 그러나 많은 학교에서 이들은 1, 2등급 학생에 비해 학교 측의 세심한 입시 지도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이른바 ‘서울 주요대학’ 위주의 진학실적에 얽매인 학교와 교사 입장에서는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공을 들일 수밖에 없어서다. 교사들은 입시 구조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자사고 진학담당 교사는 “주요 대학이 학종 전형 중심의 수시 비중을 급격히 확대하면서 ‘수시는 재학생, 정시는 재수생’ 전형처럼 돼버렸다”며 “해당 대학의 수시전형을 노리려면 자사고만 해도 1·2등급이 아니고서는 어려워 나머지 학생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데 어지간한 일반고는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학교마다 2학기부터 최대 6번 지원할 수 있는 수시전형에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이 잘 대비하도록 집중하느라 나머지 대다수 학생에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3학년 2학기부터는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수능준비를 충실히 할 수 없는 여건이 돼버린다.

본보가 최근 고교 내신 3·4·5등급 110여명을 비롯해 재수생 180명(중복응답)에게 ‘학교에서 수능 준비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를 물었더니 비슷한 진단이 적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내신과 학생부 관리 때문에 온전히 수능에 집중할 수 없다”는 등 ‘학생부 준비 치중’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고, ‘교사들의 역량 부족’(20.6%)과 ‘학교 차원의 수능 준비 소홀’(14.7%) 탓 등을 들었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입시제도를 포함한 교육정책의 방향은 교육의 본질이 학교 현장에서 잘 구현되도록 설계돼야 하는데 특목고와 자사고, 일부 주요 대학 등의 입시문제에 치우치고 단순히 사교육 경감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라며 “학교가 공교육 기관이 아니라 입시경쟁 관리 기관처럼 되면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갈등을 빚고 불행한 상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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