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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氣 살리자] "교과서 이해 안돼 무조건 외워요" 학생 참여수업 말뿐인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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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3 19:32:12 수정 : 2018-05-23 19: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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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현실과 동떨어진 교과서/수업만으로 공부 힘들어… 불안한 아이들 “학원 갈 수밖에” / 교과목 요모조모 뜯어보니 / 개념 이해보다 답 맞추기 여전한 ‘수학’ / 학생 수준에 맞춰 수업 힘든 ‘초3 영어’ / 학원 의존도 키워… 작년 사교육비 ‘최고’/ 근본적으로 들여다볼 때 / 학업부담 줄이겠다면서 암기식 그대로 / 시험으로 줄세우기식 평가방식 문제 / 창의력 키우는 진정한 교육 고민해야
#1.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17)양은 학교에서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은 후 수학 학원에 등록했다. 수학 점수가 떨어지면서 중학교 때보다 반에서 순위가 몇 단계나 밀렸기 때문이다. 김양은 “중학교에서도 수학이 어렵고 힘들었는데, 고등학교 와서도 여전하다”며 “선행학습을 한 친구들은 곧잘 따라가는데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지금이라도 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학부모 안모(48·여)씨는 아이 영어 학원을 알아봐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영어과목 정규과정이 초등학교 3학년에 시작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때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가 드물다. 안씨는 ‘누구 집 아이는 초 2 때부터 영어로 대화하는 데 능숙하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학교 수업만 따라가도 될지 걱정이 앞서기만 한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면 풀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했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당국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말이다. 수험생들은 “교과 범위에서 출제했겠지만 교과서 안에서 나온 문제는 없다”고 푸념한다.

정부는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능력 향상과 교과별 학습량 적정화를 목표로 한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새 교과서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정작, 교과서 내용은 교육과정 목표에 부합하지 않거나 교육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교과서로만 공부해서는 학원 등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다. 월평균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근본적인 고민 없이 자주 개정되는 교육과정과 학생 줄세우기 식의 평가가 학생 부담만 높이고 교육환경을 획일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 혼자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 교과서

23일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올해 중 1, 고 1이 사용하는 새 수학 교과서(중학교 10종, 고등학교 9종)를 분석한 결과,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인 ‘학생 참여 중심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 양산을 막기 위해 단편적 지식 암기 대신 체험 활동 등을 통해 학생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중 1 교과서는 설명을 읽고 이해하는 기존 교과서와 달라진 점이 없다. 학생이 스스로 탐구해 개념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한 중 1 교과서는 ‘맞꼭지각’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탐구과정인 ‘생각열기’ 코너에서 실제 종이에 두 직선을 긋고 네 각을 표시한 뒤, 종이를 오려서 각의 크기를 실제로 비교해 보라고 제시하고 있다. 학생이 생각할 틈도 없이 페이지 하단에 ‘맞꼭지각은 서로 크기가 같다’는 결론을 드러내고 있다.

사걱세 수학사교육포럼 최수일 대표는 “대부분 교과서가 ‘개념설명→예제 풀이→문제풀이 연습’이라는 전형적 3단계 설명식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과정 중심 평가는 수업 상황에서 학습과 평가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교과서는 ‘서술형 (평가)항목’을 따로 만들어 수업 후 별도 시간을 내 풀어 보도록 하고 있다. 중간과 기말 지필고사로 학생을 평가하다 보니 학생들은 개념 이해보다는 정답을 하나라도 더 맞히는 데 집중한다.

서울 강서구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원모(17)군은 “수학은 어려운 문제를 한 문제라도 더 많이 맞히는 게 내신에 중요하다”며 “이해가 안되더라도 일단 무조건 외워서 답을 맞히는 게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교과서만으로 부족”… 사교육 조장하는 과목들

정부는 사교육을 미리 받지 않더라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생 발달 수준에 맞게 체계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영어교육을 내실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초3 영어 교과서를 보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정규과정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한 출판사의 초3 영어 교과서는 전체 11단원 중 첫 단원에 알파벳을 배우게 한 뒤 2단원에서 바로 ‘그림이 가리키는 물건을 읽고 쓰기’ 등 말하고 쓰는 과제가 나온다.

경기 한 초등학교의 3학년 담임인 김모 교사는 “알파벳을 3학년에 처음 배우지만 막상 수업해보면 한글 받아쓰기는 틀려도 영어 받아쓰기는 틀리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준비해 온다”며 “대부분 선행학습을 하다보니 처음 배우는 학생 수준에 맞춰 수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초 3에 영어를 시작하면 늦다’, ‘알파벳은 유치원 때 끝내고 초등학교 졸업 전에 영어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등 학교 교육과정보다는 사교육을 통해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영어 교과의 부담은 급격히 증가한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수능 대비, 내신 시험을 목적으로 교과서 외에 여러 권의 교재를 추가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고 1인 이모군은 “학교 선생님이 문제를 출제할 때 교과서에서만 내면 (너무 쉬워서) 출제할 내용이 없다”며 “부교재로 EBS 교재 등 2권을 추가적으로 선택해 영어만 해도 3권으로 공부해야 하니 분량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문·이과를 통합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신설한 소프트웨어(SW) 교육마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SW교육은 올해부터 중학교에서 필수과목이며, 내년에는 초 5, 6학년 기초소양 과목으로 추가된다.

사교육 업계에서는 이러한 교육과정 변화에 편승해 학부모의 불안감을 이용해 과도한 선행교육을 조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일부 코딩 학원들은 토요일 하루 3시간 코딩 수업에 월 30만∼40만원, 3개월에 100만원이 넘는 수업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의존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7만10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5.9% 증가했다. 사교육비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최고치다.

특히 국어와 영어, 수학 등 교과 사교육비는 1인당 월평균 19만8000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예체능 및 취미·교양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7만2000원)도 전년 대비 17% 늘었다.
◆교과서 말고도 근본적인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교과서가 개정된 교육과정 취지에 맞게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빈번한 교육과정과 학생 평가 방식 개정에 있다고 지적한다.

역대 교육과정을 연구해 온 교사연구단체인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의 홍순희 교사는 “교육과정이 ‘어떤 사람을 만들겠다’는 큰 틀 없이 정권과 사회 논리에 맞춰 자주 바뀌고 성급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홍 교사는 이어 “핀란드 등 대부분 국가는 10년 정도에 걸쳐 질 높은 연구를 시행하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취합하는 등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교육과정을 바꾼다”면서 “우리는 2015 개정 교육과정 기초연구에서 총론 확정까지 3년이 채 안 걸렸다”고 설명했다.

교육 시민단체인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이찬승 대표는 “학교는 현재 고입과 대입을 위해 학생을 상대평가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상태”라며 “교과서 난이도 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것은 학생 줄세우기를 위해 배운 내용을 더 까다롭게 비틀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학생 개인의 잠재력을 키우는 진정한 교육을 위해서는 획일화된 교육과정을 유연화하고, 중간·기말고사와 수능으로 대표되는 표준화 시험의 부담을 줄이는 등 근본적인 고민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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