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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칼럼] 이념적 남·북·미 외교, 실리외교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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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0 21:24:06 수정 : 2018-05-20 23: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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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적당한 규모의 핵무기 보유는/美·中 숨은 정치적 이해관계 합치/文정부 이상주의적 접근에 우려/이념외교의 허상에 빠져선 안돼 비핵화 방안을 놓고 북·미의 기싸움이 팽팽해지고 있다. 외교 사안에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위험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현재의 국제환경 하에서 북한 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상이다. 주변 이해관계국이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거나, 원하더라도 해결 대가가 너무 커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해버리면 해결할 수 없는 외교 사안이 되게 마련이다.

북한이 핵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폐기’(CVID) 하는 대가는 단순한 체제 보장이나 경제협력이 아니다. 북한은 더 이상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해 확실한 핵우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항시적인 한·미동맹의 핵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방어용 핵무기 능력이라도 보유하는 것이 필수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폐기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결국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의 중립국화일 수밖에 없다. 일단 중립국화하면 한반도를 장기적으로 사회주의화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최원목 이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
이를 미국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더구나 해결하지 않고 적당히 관리해두면 정치적으로 쓸모가 많은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위험 관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을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폐기하는 대신 방어용 핵무기만 남겨두게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격 능력을 무력화시키더라도 미국은 자국의 안전을 위협받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구실 삼아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등에 다양한 압력과 대가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겉으로는 일관되게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하며 CVID를 요구하는 속셈은 미국의 실리외교에 있다. 대북 협상에서의 ‘레버리지’(지렛대)를 행사해 북한에 제공할 양보를 미리 줄이는 카드인 것이고, 대중 압박용으로도 활용해 중국으로부터 통상 분야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중국도 북한이 원하는 만큼의 핵 폐기 대가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내 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CVID를 끝까지 강요할 의도도 없을 것이다. 핵 폐기가 한반도 중립화로 이어져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할 이유는 없다. 이에 북한이 적당한 규모의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방관해버리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숨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합치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떠한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진정한 한반도 비핵화와 자주외교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으로 선전해 댄다. 냉정한 외교 현실 속에서 유토피아를 그리며 주체 이념외교를 하고 있다. 최소한 우리 주도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 ‘코리아 패싱’을 막았기에 정상외교의 승리로 선언하고 있다. 그것이 전쟁이 아닌 전투에서의 승리이고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 이전 북한의 사전 협상력까지 높여준 효과가 있는데도 말이다.

북한이 지금 중국의 막후 지원 하에 짜고 있는 시나리오는 평화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출구전략일 것이다. 협상 결렬 시, 북한이 결국 완전한 핵 폐기에 합의해주지 못하는 원인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트럼프 정부가 수용하지 않는 데 기인한다고 선전해대는 시나리오다. 한반도 영구 평화와 협력을 위한 제안을 미국 측이 거부하기에 핵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됐다는 메시지다. 이를 위해, 지금은 세계 여론전에서의 우위가 필요하고 조력자가 필요하다. 지난번 판문점 정상회담은 중국의 감독 하에 북한의 주연으로 탄생한 드라마인 것이고, 문재인 정부는 멋들어진 조연 연출로 세계 이목을 집중시켜 주었다. 단번에 북한 정권의 평화 이미지를 세계에 심었고, 북한은 미국과의 본 협상에서 다소 유리한 위치에서 시나리오를 전개할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 입장에서 큰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미묘하게 바뀌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계속 조연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그러지 않으면 국내외 정치적 타격이 워낙 크다. 이상주의적 접근으로 북한 문제에 올인한 정권이 북한의 전략에 의해 이용당하게 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됐다.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실리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데 우리만 주체 이념외교의 허상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최원목 이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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