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저렇게 마감되기도 한다. 아무도 모르게 숨을 놓아버린 고독한 할매의 머리맡엔 막걸리 두 병이 댕그마니 놓여 있었다. 또 이렇게 마감하기도 한다.
“소녀가 채 되기도 전에 나는 소녀가장, 바보 같은 장발장, 나는 빵만 훔치지는 않아. 허공을 떠도는 포개지지 않는 입술들,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는 남의 살 내게 필요한 것은, 한 모금의 젖은 술과 함께 젖을 눈물뿐이었네// …// 몇 번이나 죽어봤을까/ 깃털만치도 차이 나지 않는 심장의 무게/ 얼마나 사랑했을까/ 신들이 내 무게를 재고 있네/ 돌아가면 같아지지 목숨의 무게”(‘여신의 저울’)
미학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언어를 생생하게 시로 토해 낸 김해자 시인. 그녀는 “밥과 술 그리고 웃음까지 나눠 먹는 이웃들과 친구들이 이 시들 중 몇 편이라도 듣고 껄껄 웃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걷는사람 제공 |
“어느 땐가 그 여자 기초수급자를 위한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갔다, 시무룩 진짜 수급자처럼 앉아들 있는 통에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매 하나 찍어서 실실 타로 점을 봐주기 시작했다는데, 그렁그렁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야 말았고 눈물이 강물이 되어 한번 휘몰아 간 뒤에, 지퍼 속에 갇힌 입들이 지퍼를 열고 나와 저도요 저도요 하는 통에 수업을 몽땅 타로 점 봐주는 일로 공치고 말았다는데/ 쫓겨나고 이혼하고 망하고 언제 바닥치고 손목 긋고 꽁꽁 짜매논 이야기가 술술 쏟아졌다는데, 그라도 지가 글쓰기 선생으로 왔는데요, 오늘 풀어놓으신 야그를 요, 고대로 써가 오시믄 사주도 봐드린다카이, 그다음 주 소설 같은 인생 읽어내느라 날밤 새웠다는데”(‘해자네 점집’)
“불구가 아니면 불구에 닿지 못하는/ 불구의 말, 떠듬떠듬 네게 기울어지던 말들이/ 더듬어보니 사랑이었구나”(‘불구의 말’)
김성규 시인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 ‘걷는사람’의 시인선 1번으로, 그것도 여성 시인의 것으로 나온 시집이어서 심정적으로 쫓겼다는 김해자 시인은 “특히 젊은 시인들이 너무 주눅 들어서 문단의 규범과 미학에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면서 “이렇게 패기도 흥분도 없는 자세로 미래가 있을까 싶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시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러한 시작 태도는 라이프 자체를 고사시키는 느낌”이라며 “삶의 언어를 다루는데 왜 이런저런 눈치를 봐야 하느냐, 시는 이렇게 써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국문과를 다니다가 조립공, 시다, 미싱사, 학습지 배달, 학원 강사 등을 전전하며 일찍이 일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시를 써오며 전태일문학상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김해자는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내면 같은 건 벗어버리고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날것으로 소화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아닌 걸 아니라고 말도 못하고,/ 나는 왜 나를 지나쳐 왔던가/ 분질러진 시간이여// 시간을 알약처럼 삼키며/ 우우우, 우리는 삶을 지나쳐왔네”라면서 “살기 위해선 시 같은 거짓말과 허구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불렀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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