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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5·18 당시 전남도청 지하실서 475구의 사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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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16 16:19:49 수정 : 2018-05-16 1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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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일본서 간행된 잡지에 증언 게재 / 공식 사망자 165명의 약 3배 일본에서 간행된 한 잡지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지하실에서 475명의 방치된 시체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는 현재까지 5·18 관련 단체와 광주시가 공식 집계한 사망자 수 165명의 3배에 가까운 규모다. 이는 16일 일본 ′한국문제 그리스도인 긴급회의′가 1980년 7월10일 발행한 ′한국통신′ 잡지에서 드러났다.

일본 동경에 소재한 그리스도인 긴급회의는 일본어와 영어로 ′한국통신 임시증간 광주사건′을 발행했다. ′광주사건′을 다루려고 임시 제작했다. 임시증간호에는 18쪽 분량의 ′광주사건′이 광주항쟁의 경과와 의미, 삭제된 기사, 증언, 광주사건 일지 순으로 특집 게재됐다. 긴급회의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선교사로 구성된 단체로 한국에서 들어온 5·18 자료를 정리해 미국과 캐나다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한국문제 그리스도인 긴급회의가 광주항쟁을 특집으로 다뤄 1980년 7월 발행한 잡지.
5·18 기록관 제공
광주사건 잡지의 ′증언′ 부분은 모두 9가지 항목으로 정리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마지막 9번째 항목으로 ′나는 5월23일 전남도청 지하실에서 475명의 시체가 방치된 것을 목격했다′는 내용이다. 사망자 수가 일의 자리까지 나와 당시 누군가가 일일이 집계한 것으로 관측된다. 목격자가 시체를 봤다고 증언한 5월23일은 계엄군이 시민 저항으로 도심 외곽으로 물러난 비교적 평온 상황이어서 집계가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38주년을 맞고 있지만 정부의 공식 사망자 수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5·18에 관한 국가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광주시는 사망자 수를 165명으로 추정한다. 광주시가 사망 보상금으로 지급한 155명과 구묘역에 안치된 행방불명자 6명,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 무명의 묘 5기 등을 포함해 추정한 수치다.

5·18 당시 광주를 찾은 미국인 선교사들도 200∼300명의 시체를 봤다고 증언한 바 있다. 광주시에 400여명이 5·18 행불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81명만 인정됐다. ′한국통신′에 실린 사망자 475명 증언이 어떤 과정으로 입수돼 실렸는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광주사건 잡지의 증언에는 자신의 집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장면도 생생하게 그렸다. 한 목격자는 “다리의 총을 맞아 움직일 수 없는 여성 노인에게 공수부대원이 다가가 관자놀이에 총을 쐈다”고 했다. 다른 목격자는 “어린이를 껴안은 엄마를 향해서 발포한 것과 눈앞에서 십수명의 시민이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일부 목격자들은 “계엄군이 빌딩이나 상가로 도망가는 시위대를 쫓아가 총검으로 찔러죽였다”고 전했다.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5·18 당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광주의 참상 소식은 일본의 선교사들을 통해 북미 지역으로 전달됐다”며 “5·18 희생자 수는 진상 규명돼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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