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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에서 색을 꺼내자, 세상의 속살이 드러났다

입력 : 2018-05-08 07:00:00 수정 : 2018-05-07 21: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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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수묵화로 현대회화 그리는 김선두 화백 천관산 정상에 오른 김선두 화백의 등줄기가 땀으로 흥건하다. 산 아래 전남 장흥 고향마을과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바위에 그가 정좌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그가 벼락같이 빠른 손놀림을 한다. 한순간에 풍경이 스케치북에 뛰어들었다. 어린 시절 땔감을 구하기 위해 무수히 오르내리던 길이 아니었던가. 눈과 몸으로 익힌 풍경들이다. 비탈진 산등성이의 밭과 그 가운데를 굽어 가로지르는 길은 마을로 이어졌다. 김 화백의 작품 ‘느린 풍경’의 무대다.

“우리는 길을 통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온다. 기능적인 직선길에 비해 곡선길은 사람의 왕래와 소통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난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굴곡을 따라 생성된 길이다. 과속을 허용하지 않는 곡선길에는 산책의 여유가 흐른다. 그 길에서 우리는 향긋한 바람을 만나고 꽃향기에 한눈을 팔고 새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사람다운 길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별을 보여드립니다
그의 ‘느린 풍경’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보다 밀도 있는 삶이란 일과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백을 두고 가끔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곡선 같은 것이라는 얘기다.

세계미술계가 재편되고 있는 요즘 한국화의 우월한 유전자를 곡선의 필획으로 보여줘 주목받고 있는 김 화백이 오는 8월 22일부터 9월18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수묵의 진정한 맛을 보여주는 전시를 연다. 먹과 필획으로 보여주는 곡선의 세계다. 바로 생명의 율동, 에너지를 집적한 형상이다. 전시관람을 위해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 관계자들도 방한할 예정이다.

“굽이진 길이 그윽한 곳으로 통하게 마련이다. 굽은 것은 깊은 것이고 깊은 것은 굽은 것이다. 바로 생명 에너지가 요동치는 은밀한 세계다.”

사실 세상이치도 예술의 세계도 그렇다. 굽은 것은 곧은 것을 이기고 인내는 조급함을 이기기 마련이다. 내면의 세찬 충돌에서 나온 힘은 외부의 강한 힘을 이긴다. 느리고 흐릿한 가운데 찾아낸 아름다움은 투명한 미감을 이긴다. 화려한 색의 시대에 김 화백이 수묵을 부여잡고 나가는 이유다.

“동양의 많은 작가가 고흐와 모네의 그림을 직접 대면했을 때 유화로 계속 그릴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자오우키(趙無極)의 추상 수묵과 피카소가 모사한 중국 수묵화를 보았을 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는 수묵의 흑과 백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조합에서 색조의 차이만이 아니라 먹의 농담대비가 불러일으키는 조명효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화면에 부여하는 깊이를 구현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기존 수묵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작업이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빛나는 유산임이 분명하다. 부석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첩첩이 쌓인 산세를 그릴 때 가장 적합한 색이 먹색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펼쳐진 무한공간을 평면에 압축해 그리는 것은 수묵만큼 뛰어난 것은 없다.

“동양의 수묵화는 채색에서 먹으로, 유채색에서 무채색으로, 설명에서 함축으로 흘러왔다. 수묵화의 핵심은 함축미다. 이런 점에서 수묵화는 현대회화로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눈길을 끄는 그의 작업은 장지에 색으로 그리거나 색을 여러 번 칠한 장지 위에 먹으로 형상을 그리고 이를 칼로 오려낸 다음 채색한 장지를 붙이는 작업이다. 먹은 사라지고 채색만 남은 수묵화 작업이다.

감성의 젖줄인 장흥 고향집 옥상에 올라 천관산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김선두 화백.
“어느 날 먹에는 다섯 가지 색이 들어 있다는 동양화 화론의 묵유오채(墨有五彩)라는 말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까만 먹에 들어 있는 색을 꺼내고 싶어졌다. 까만 먹에서 색을 느끼게 해주거나 반대로 먹선에 색을 넣었다. 필법은 무채색의 먹에서 색을 느끼게 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필선이 에너지의 형상이고 에너지가 빛이고 색이라는 점에서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의 ‘싱그러운 폭죽’시리즈도 필선의 색이다. 불꽃놀이를 연상시킨다. 봄에 피어나는 풀꽃은 대지가 쏘아 올린 아름다운 폭죽이라 했다. 생명이 불꽃이다. 줄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폭죽의 궤적이라면 꽃과 잎은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이다.

“폭죽은 빛나는 절정의 순간을 위해 땅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솟구쳐 피어나는 하늘의 꽃이다. 땅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거는 비장함이 있다. 이는 삶의 절정 혹은 이상이 실현되는 순간, 깨우침의 순간,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의 끝없는 붓질로 닳은 채색 붓에 스민 색들에선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털이 빠져 듬성한 붓에 베인 색들이 깊다. 오랜 시간 남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의 인고의 시간, 그리고 사랑의 빛깔이 있다면 저런 색일 게다. 어머니의 듬성듬성한 하얀 머리숱을 생각나게 만드는 뭉클함이다.

“노모의 머리숱 같은 붓으로 선을 그으면 노래 잘하는 블루스 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처럼 자연스러운 화필의 거친 맛이 난다. 새 붓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느낌이 있다. 자연스러운 울림이 담기게 된다.”

화가는 그림에서 한 소식을 얻기 위해 수많은 붓질을 한다. 오래 긋다 보면 붓질의 무게가 선에 담겨진다. 필묵에 화가의 피와 땀이 담겨 깊어지고 묵직해진다. 그 경지는 가본 자만이 안다. 다 쓴 붓이 큰 무덤을 이루고 벼루가 다 닳도록 먹을 갈아야 한다.

“예술은 감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자신이 살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을 감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요즘 들어 새롭게 느끼는 것이지만 붓질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면 그 속살이 보일 때가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정점에 다다랐을 때 그 감각은 그 분야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수평이동한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터득한 감각으로 세상을 보면 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맛을 감별하거나, 백화점에서 옷을 사거나, 가요계에서 누가 이 시대 최고의 가객인가 서열을 매기거나, 심지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때도 필묵의 감각에 넣었다 빼내면 답이 나온다. 붓질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 일이관지(一以貫之)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한국미술의 희망을 말한다. 다만 평단의 무관심과 동양회화 이론가들의 부족, 서구식 미술교육 등을 넘어서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누군가, 어디선가 이미 꿰뚫고 나아가리라 믿고 있다. 아마도 그도 그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 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오해는 시대정신이 풀어가 주리라 확신한다. 바닥에 이른 위기는 기회의 신호탄이다. 침체는 오히려 극복의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한국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미술사의 스포트라이트는 한국화 작가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가 모처럼 고향 밤하늘의 별빛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길을 별에게 묻는 밤이다. 삶의 비의를 그 어드메쯤 별자리에서 찾을 것만 같은 밤이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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