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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여인의 고혹적인 향수 같은 비오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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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05 06:00:00 수정 : 2018-05-04 23: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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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향과 향수향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화이트 품종
‘비오니에의 마법사’ 프랑수아 빌라르 방한 인터뷰
 
프랑수아 빌라르 대표 와인들
바람결에 스치는 머리카락. 그리고 단 한번의 스쳐 지나감. 하지만 우아하면서도 맑고 순수한 하얀 꽃 같은, 낯선 그녀의 향기는 오랫동안 코끝에 머물다 가슴속에 내려앉아 봄이 됩니다. 제비꽃향과 복숭아, 살구 등의 과일향이 우아한 여성의 향수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화이트 품종이 있습니다. 바로 비오니에(Viognier)입니다. 아로마가 뛰어나고 미네랄도 풍부해 한번만 경험해도 그 맛과 향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비오니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급 와인 생산지 북부 론에서 주로 재배됩니다. 북부 론에서 오로지 비오니에 품종 100%로 화이트 와인만 생산하는 곳이 꽁드리유(Condrieu) 마을로 이곳의 샤또 그리예(Chateau Grillet)에 생산되는 와인은 비오니에의 최고봉의 꼽힌답니다.

사실 비오니에는 1970년대만해도 거의 사라질 뻔했습니다. 생산량이 너무 적은데다 해마다 생산량이 굉장히 불규칙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전 로마시대때부터 조성된 북부 론의 포도밭은 길게 이어지는 론강을 따라 매우 가파른 경사진 곳에 조성돼 있습니다. 따라서 기계수확이 불가능해 모두 손수확을 해야합니다. 더구나 미스트랄이라는 굉장히 차고 건조한 바람이 많이 붑니다.
프랑수아 빌라르 포도밭 전경. 출처=홈페이지
미스트랄은 와인 생산자에게는 양날의 칼과 같아요. 비가 온 뒤 미스트랄이 거세게 불고 지나가면 습기가 말라 포도재배에 좋지만 너무 세게 불면 포도나무가 꺾이고 쓸려 내려가 포도농사를 망쳐버리기 때문이죠. 론 전체에서 북부 론의 생산량이 5%에 불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와인의 양이 적으니 가격은 당연히 비쌉니다. 더구나 바디감은 묵직하고 좋은데 산도가 너무 낮아서 장기숙성도 어려운 품종이라 생산자들이 비오니에를 점점 포기하게 됩니다. 또 일부 생산자들은 한동안 오크 숙성을 너무 강하게 해 비오니에의 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기름진 느낌 와인을 만들어 인기도 곤두박질 치게되죠.

이처럼 멸종 위기에 놓였던 비오니에가 다시 부활한 것은 1980년 후반부터입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 비오니에의 독특한 향이 컬트적인 매력을 어필하면서 주목을 받게됩니다. 실제 비오니에는 향이 엄청 좋답니다. 인동초, 살구, 배와 조금 더 달콤한 과일향이 풍성하고 잘 만든 비오니에는 머스크 같은 화장품향도 살짝 납니다. 이 때문에 비오니에를 마셔 본 이들은 향수같은 와인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슬슬 빠지게 됩니다. 단점이던 산도도 신선한 스타일로 빚으면서 극복하게 됩니다. 샤토 그리예는 단일 포도밭(모노폴 momopole)으로 이뤄진 아주 작은 마을로 산도가 더 좋고 과일향이 풍부한 최고의 꽁드리유가 생산돼 꽁드리유에서 독립적인 AOC를 받았답니다. 
한국을 찾은 프랑수아 빌라르.
프랑수아 빌라르(Francois Villard)는 이브 뀌에롱(Yves Cuilleron), 피에르 가이야르(Pierre Gaillard)와 함께 북부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생산자로 명성이 높습니다. 꽁드리유 레 테라스 뒤빨라(Condrieu Les Terrasse du Palat)와 레 꽁뚜르 드 드뽕상(Les Contours de Deponcins)은 그의 대표 비오니에로 와인평론가들이 꽁드리유를 얘기할때 반드시 거론되는 와인이죠. 최근 한국을 찾은 ‘비오니에의 마법사’ 프랑수아 빌라르를 만나 오크 사용을 절제하면서 꽃 같기하고 향수 같기도한 와인을 빚어내는 과정을 들어봤습니다. 그의 와인은 하이트진로에 수입하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빌라르 꽁드리유 레 테라스 뒤 빨라.
프랑수아 빌라르는 양조때 가장 신경쓰는 점은 미네랄과 신선함이라고 강조합니다. 와인이 신선하려면 포도가 아주 잘 익어야 하기 때문에 그는 귀부균에 감염돼 당도가 매우 높아진 포도가 항상 5% 정도 섞일 정도로 포도가 완전히 익었을때 수확합니다. 꽁드리유 레 테라스 뒤 빨라 2013은 샤바네에서 생산된 평균 수령 25년의 비오니에 100%로 빚는데 새 오크는 20%만 사용합니다. 나머지는 3∼5년 사용한 오크로 6개월 동안 잘 저어주는 바토나주를 하며 11개월동안 숙성합니다. 생산량은 연간 1만2000∼1만3000병에 불과합니다. 2013년 빈티지를 함께 시음했는데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절정은 멀었다고 강조하네요. “ 일반적으로 꽁드리유는 대부분 숙성잠재력이 좋은 와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 꽁드리유는 20년이 지나도 좋을 정도의 숙성잠재력 있답니다. 포도를 수확할때 최대한 늦게 수확해요. 포도가 정말 잘 익억을때 신선함과 산도를 잘 가두기 때문이죠”. 
프랑수아 빌라르 레 꽁뚜르 드 드뽕상.
포도가 잘 익으면 줄기에서도 신선한 산도를 뽑아낼 수 있어 그는 줄기째 양조를 하는 방식을 고집합니다. 숙성과정에서 다른 배럴로 옮기는 ‘통갈이’ 작업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군요. 죽은 효모와 함께 계속 숙성하면 와인의 신선함이 잘 유지되지만 배럴을 옮기면 신선함을 잃기때문입니다. 화이트, 레드 와인 모두 천연 효모만 사용해 양조하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천연효모를 사용하면 생산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와인을 양조하기 어려워 많은 생산자들은 이산화황으로 자연효모를 제거한 뒤 배양된 인공효모를 사용해 와인을 빚기때문입니다. “물론 천연효모를 쓰면 통제하기 쉽지않아 원하는 스타일로 와인을 만들기 쉽지않죠. 하지만 와인메이커는 정체성이 중요해요. 나는 다른 와인과 굉장히 다르고 나만의 스타일 보여주는 와인을 만들고 싶어요. 많은 생산자가 인공배양된 효모를 사서 쓰지만 천연효모를 쓸때 내가 가진 것을 훨씬 더 많이 보여줄수 있어요. 크로즈 에르미따쥐, 생조셉, 꼬뜨로띠 등 유명한 생산지는 각 토양마다 특징이 있는데 인공 효모를 쓰면 그런 특징이 없어지죠. 와인 생산자는 와인을 통해 그 떼루아를 가장 잘 해석해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얘기하는 떼루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프랑수아 빌라르 레 꽁뚜르 드 메를랑.
그는 북부 론의 대표 품종인 마르산(Marsanne)과 루산(Roussanne)으로도 우아한 화이트 와인을 빚어냅니다. 프랑수아 빌라르 레 꽁뚜르 드 메를랑(Francois Villard Les Contours de Mairlant)은 마르산에 루산 15% 정도를 섞는데 섬세한 흰꽃 향기 등 섬세한 아로마와 레몬 등 감귤류의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산도가 매력적입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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