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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포화속에서도 그는 음표를 그렸다

입력 : 2018-05-05 03:00:00 수정 : 2018-05-04 20: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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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악가 쇼스타코비치 / 2차대전 독일 포위 한복판에서 /‘교향곡 7번’ 어떻게 탄생했는지 /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함께 그려
M. T. 앤더슨 지음/장호연 옮김/돌베개/2만2000원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M. T. 앤더슨 지음/장호연 옮김/돌베개/2만2000원


“도서관의 열기는 바닥났다. 배관이 얼어서 터졌다. 1월 말에 전기가 끊겼다. 그래도 사서들은 손전등을 들고 어둑한 서가를 돌았고, 기름이 떨어지면 나무에 불을 붙여 들고 다녔다. 여전히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들에게 봉사했고, 시 정부가 제기한 문제, 즉 성냥이나 양초를 만드는 대체 방법을 찾고자 했다. 건물이 점점 추워지고 전쟁으로 인한 타격이 커지자 결국 독서실을 차례로 폐쇄했다. 포위된 동안 사람들은 소설을 읽고 일기와 시를 썼다. 상황이 갈수록 암울했다. 하지만 소설과 시 창작 활동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을 상기시켰고, 혼란의 와중에도 문명의 규범과 일상을 잊지 않도록 자극했다. 비록 갇혀 있지만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 탈출을 꿈꾸었다.”

읽는 동안 마치 쇼스타코비치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공습경보가 울리고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처참한 전쟁의 현장에서도 오선지 가득 음표들을 채워 넣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은 그렇게 험난한 가운데서 태어났다. 이 책은 때로 다큐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읽힌다.

이 책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전 생애를 다룬다. 전쟁 한복판에서 이 교향곡이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연주되고 사람들에게 힘을 쥐여준 이야기다. 현대 음악가들 가운데 쇼스타코비치만큼 사후 재조명되어 인기를 얻은 경우는 흔치 않다.

러시아의 현대 음악가 쇼스타코비치는 사후 더 명성을 얻고 있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군의 최대 격전이었던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에도 작곡에 열중했다.
스푸트니크 조지아 제공
그는 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 혁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열정은 더욱 영글었다. 저자는 유소년기부터 병석에 누워서도 작곡에 매진하다 1975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70년의 세월을 시간 순으로 펼쳐낸다.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교향곡 7번’의 악보가 비밀리 서방 세계에 전달되는 과정은 스파이 소설처럼 전개된다.

평론가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이중성을 지적한다. 굴라크(정치범수용소)로 유배되거나 망명을 떠나지도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타협과 순응으로 목숨을 부지한 겁쟁이로 폄하했다. 그는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내걸고 대신 쓴 선전 기사에 언제나 기꺼이 서명했다. 히틀러와 스탈린 치하에서 그의 친구들을 수없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밀경찰(NKVD: KGB의 전신) 악단을 위해 활기찬 춤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과연 쇼스타코비치는 충성스러운 스탈린주의자 또는 기회주의자였을까, 아니면 반체제 인사 내지 소신주의자였을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대답은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친구들을 도우려고 항상 애썼고, 공포 시대에 감옥에 갇히거나 죽은 무고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2차 대전 직후 스탈린이 또 다른 숙청을 준비하는 기미가 보일 때 스탈린과 그 졸개들을 은밀히 조롱하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죽기 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 방식에 대해 몹시 수치스러워했다고 한다.

“나는 용기 없는 비겁자였다. 설령 그들이 내게 거꾸로 들고 보여줬어도 나는 무엇이든 서명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혼자 있게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현대 음악의 거장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평가 중 가장 타당한 말일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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