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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반려식물과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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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0 23:23:31 수정 : 2018-04-20 23: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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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할 때 마스크 준비하는 일은 / 비오는 날 우산 챙기듯이 일상화 / 사정이 이러니 반려동·식물처럼 / ‘반려마스크’까지 나오지 않을까 지난 주말에는 산정호수 명성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완두콩과 버터헤드 상추 묘종을 얻어왔다. 땅 한 뙈기도 없는 내가 친구가 애지중지 싹틔운 그 묘종을 탐한 이유를 나 자신도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당장 스티로폼 박스를 구하고 흙과 퇴비를 마련해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 창 높이에 그 손바닥만 한 인공텃밭을 올려두고 요즘 매일 아침 완두와 버터헤드를 들여다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여리고 순하고 자그마한 연둣빛 잎사귀에서 받는 위안이 생각보다 커서 새삼 놀라고 있다.

고양이와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런 것일까. 어떤 시인이 영향받은 장르를 묻는 질문에 ‘식물’이라고 답한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듯도 하다. 누군가 옆에서 숨 쉬고 살아 있다는 느낌. 비록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지라도 거기, 그냥,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그 느낌. 그 존재가 영혼까지도 아름답게 물들일 것만 같은 연둣빛이라서 우리의 우울함과 불안함과 먼지 낀 마음까지도 맑아질 것만 같은 그 느낌. 그래서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을 키우는 건 아닐까.
안현미 시인

봄이다. ‘먼지에도 우주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먼지만 없다면 더없이 좋은 만화방창의 시절이다. 매화가 왔다 가더니 벚꽃이 오고, 벚꽃이 가더니 라일락이 왔다. 그 사이 진달래도 개나리도 인간들도 동시다발적으로 꽃피어 천지간이 온통 꽃세상이다. 봄을 끌어다 덮고 잠든 당신의 봄밤은 참 아름답구나. “시간이 열리고/ 문들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꿈/ 땅이 열려 물이 솟고/ 꿈도 열리는 꿈”(울라브 하우게의 ‘꿈’). 그런 꿈을 꾸고 있을까.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고 그 꿈도 이 봄도 금방 사라져버리겠지.

먼 여행을 도모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라 가까운 근린공원을 찾아갔다. 겨울 동안 비어 있던 대형 화분이 구청 공원녹지과에서 나온 사람들이 심어두었는지 튤립, 데이지, 팬지꽃들로 새단장을 하고 우리를 맞는다. 화사한 꽃화분 사진을 완두콩과 버터헤드 묘종을 준 친구에게 보내주려고 휴대전화를 들고 찍는데 꽃들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며칠 동안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쁘다고 연일 뉴스에 나오더니 마스크가 없는 꽃들이 그 먼지를 옴팡 뒤집어썼구나! 아아 먼지만 없다면 먼지만 없다면.

그동안 먼지를 지칭하는 용어도 미세하게 변화했다. 어느 순간부터 먼지는 황사먼지로, 황사먼지는 미세먼지로, 미세먼지는 초미세먼지로 세분화해서 불리고 있다. 이제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 창을 열면 ‘미세먼지 농도: 매우 나쁨’과 같은 알림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중국발 미세먼지에 관한 소식들이 매일매일의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뉴스가 아니더라도 창을 열면 당장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공기가 코를 막고 목구멍을 칼칼하게 만들어 숨 쉬는 게 힘들다는 느낌이 드니 더 이상 간과할 수 있는 문제는 분명 아닌 듯하다.

더군다나 초미세먼지가 40세 이하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높이고 태아 뇌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왔다고 하니 황사먼지 풀풀 날리는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마스크는 비오는 날의 우산을 챙기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는 그 방면으로는 무심한 사람인지라 마스크를 내 돈 주고 사본 일은 없지만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갈 때면 내 몫의 마스크까지 챙겨주는 아들 덕분에 마치 차려입고 음악회에 가듯 마스크를 장착하고 산책에 나선다. 그렇게 하고 산책하다 보면 정말 열에 아홉은 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가히 ‘마스크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풍경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처럼 곧 ‘반려마스크’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하다. 이어폰을 꽂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캔자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를 듣는다. “Dust in the wind(바람속의 먼지처럼)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그것은 바람의 먼지 같아요)~.”

안현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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