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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氣 살리자] 겉도는 대책·쉬쉬하는 학교…학교폭력 피해자 두 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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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8 19:39:53 수정 : 2018-04-18 21: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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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학교폭력에 멍드는 아이들/피해자가 다시 피해자로/갈수록 폭력 수위 높아지고 흉포화/처리 과정 가해자와 제대로 분리 안돼/학교는 은폐·축소 ‘급급’… 2차 피해 불러/지원책 ‘있으나마나’/피해 학생 전담기관 전국에 28곳뿐/사건 나면 설레발 대책…효과는 없어/사회 전반 인식의 개선 뒷받침돼야
고등학교 3학년 윤성민(18·가명)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가족이 있는 광주를 떠나 대전에서 지내고 있다. 윤군에게 학교는 악몽 그 자체다. 2학년 1학기 초부터 같은 반 아이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욕설을 퍼붓는 건 예사이고 구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명백한 학교폭력이었지만 윤군과 부모는 ‘신고해 봤자 피해자만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잠시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출석 인정이 돼 대안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해맑음센터’에서 한 학기를 보내며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은 윤군은 지난달 원래 다니던 학교에 복귀했다.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게 없었다. 남은 선택지는 대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대한민국 학교가 폭력에 멍들고 있다.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지난해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처럼 온 국민의 공분을 사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대책을 쏟아내지만 약발이 오래가진 않는다. 특히 피해자 지원대책이 부실해 윤군처럼 피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사례가 속출하는 실정이다.

◆증감 불확실… 유형은 흉포화

18일 교육당국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교육부가 2012년부터 매년 3∼4월과 9∼10월 두 차례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가해·목격 응답률과 응답한 학생 수는 꾸준히 줄어왔다. 반면 학교폭력 발생 시 각급 학교가 의무적으로 열어야 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심의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이처럼 엇갈린 두 통계는 학교폭력의 증감을 따지기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부도 현행 조사 방식의 한계를 인정해 전수·표본조사 병행과 초·중등 설문 문항 분리 등 개선안을 올해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학교폭력 수위가 점차 높아짐을 보여주는 다른 통계도 있다. 경찰에 접수되는 학교폭력 사건은 연간 1만건을 조금 웃도는 수준인데, 이 중 폭행·상해 유형이 2014년 8974건, 2015년 9188건, 2016년 9396건으로 증가 추세다. 후배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집단 폭행한 부산 여중생 사건도 이 유형에 속한다.

최근에는 언어폭력과 따돌림 등 수법도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2016년 2차 실태조사의 피해유형별 비율을 살펴보면 언어폭력이 34.8%로 가장 높았고, 이어 집단따돌림 16.9%, 신체폭행 12.2% 순이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의 괴롭힘 같은 사이버 폭력도 급증했다.

또래 여중생을 집단폭행한 뒤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당당한 가해자·쉬쉬하는 학교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안에서 가해·피해학생 구도는 다(多)대 일이다. 자연히 사안 처리 과정에서 피해학생과 그 가족이 가해학생 측 위세에 눌려 다시 상처를 입거나 멸시 등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 한 고교에 재학 중인 김지윤(16·가명)양은 중학교 2학년 때 교내 동아리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다. 김양을 더 힘들게 한 건 따돌림 자체보다 가해학생들이 사과를 거부하고 되레 “너한테 잘못이 있다”며 몰아세운 일이다. 김양은 “학교도 다수인 가해학생들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였다”고 털어놨다.

2012년부터 교육부가 학폭위 처분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하면서 이 같은 상황은 더욱 빈번해졌다. 신준하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가해학생 측이 학생부에 안 좋은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잘못을 부인하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학생들이 다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드러난 강원도 철원 모 초등학교의 장애학생 대상 학교폭력 축소·은폐 사례처럼 학교가 사안을 쉬쉬하기도 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 의원이 2016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전국적으로 학교폭력 은폐 또는 축소는 59건 적발됐고, 이와 관련해 교직원 126명이 징계를 받았다.

◆겉도는 정부 피해학생 지원책

정부는 2011년 말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피해학생 지원대책 등을 포함한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피해학생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피해학생 상담·치유 기관 ‘위(Wee)클래스’는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의 57.5%에만 설치돼 있다. 상담교사와 상담사를 더한 전문인력 배치율도 50%에 못 미친다.

현재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전담하는 기관은 전국을 통틀어 28곳에 불과하다. 6800곳이 넘는 가해학생 특별교육기관의 240분의 1 수준이다. 학교에 출석한 것으로 인정되는 대안교육기관도 정원 30명의 해맑음센터가 유일하다. 나머지 기관들은 상담 기능 정도만을 수행할 뿐이다.

차용복 해맑음센터 부장은 “가해학생과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채 사안이 처리되기 때문에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우리 센터밖에 없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매주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며 “센터가 권역별로 하나씩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져 아무리 좋은 정책이 마련된다고 해도 학교폭력을 완전히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설 교수는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학교폭력도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개선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적자원학부 교수는 “대부분 모범적인 길만 걸어온 교사들이 학교폭력 가·피해학생의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원양성기관과 임용시험, 교원평가 등 일련의 과정에서 교과지도만 강조하고 학교폭력 사후처리 등 생활지도를 홀대하는 게 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교사가 단순히 공부만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며 “상당수 교사가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답답해하는데, 교원양성 단계에서부터 평가까지 교과지도와 생활지도가 비슷한 비율로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의 교육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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