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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유찬 "MB, 돈에 대해 병적 집착…수족들은 일회용품"

[추적스토리-이명박 첫 고발자 김유찬 인터뷰下-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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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3 09:00:00      수정 : 2018-04-16 15:08:19
“1996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중앙당사에서 양심선언을 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나를 배신자라고 몰아세웠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배신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그것도 희대의 배신자. 당신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30년간 온갖 보살핌과 혜택, 초고속 승진이라는 특혜… 배신은 당신 같은 사람을 일컬어서 배신자라고 하는 것이지 당신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은 것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배신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출마 당시 대구 지역 행사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비서관이었던 김유찬 SIBC(SIBC international Ltd) 대표는 12일 세계일보와의 이메일 및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신화는 허구”라고 털어놨다.

김 대표는 “(1996년 이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선거 당시) 기획 분야에서 선거를 준비하며 상대의 마타도어에 대비해 대책을 미리 세워야 했기에 자연히 그 이유를 들여다보게 됐다”고 ‘신화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노정권, MB 차명재산 파악 압박...정 회장 등져”

―이 전 대통령과 정주영 명예회장은 왜, 어떻게 결별했는가. 많이 연구했다고 들었는데.

“두 사람이 결별하는 과정을 보라. 누가 봐도 좀 이상하지 않는가. 30년을 키워준 정 명예회장을 하루아침에 배신한다. 적군인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진영으로 투항하며 전국구 의원직을 하사받는다. 정 명예회장의 종손인 한 인사로부터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사실일 것으로 확신한다. 1990년대 초 당시 노태우 정권은 이미 이 전 대통령의 숨겨진 차명재산의 상당 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다. 정 회장의 (국민당)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 노 정권은 이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너 차명재산 다 빼앗기고 감옥 갈래, 우리한테 협조하고 전국구 국회의원 감투 받을래.’ 이 전 대통령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의 기준으로 본다면 훨씬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30년 주군 정 명예회장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쉽게 믿기지 않는다.

“(1996년경 이 전 대통령의) 국회담당 비서관 시절에도 공직자 재산신고와 관련해 국회 감사담당관실에서 불러 갔더니 두툼한 자료를 보여주며 많은 부동산 등 이 전 대통령의 재산이 누락됐다고 지적하더라. 구체적으로 경남 마산의 고급빌라 20채 등을 누락됐다고 지적받았다. 이 대통령은 이를 보고하자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했고 이후 누락 부동산 문제가 유야무야 처리됐다. 1996년 제15대 총선 때에도 정 회장과 이 전 대통령의 수수께끼 같은 결별 이유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이 쓴 자서전 <신화는 없다>와 몇몇 책자를 봐도 어거지 합리화를 하려니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수족들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려”

―이 전 대통령이 보좌관들에게 인색했다고 하는데.

“돈에 대한 병적 집착과 아랫사람에 지극히 인색했던 수전노 근성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려져 더 이상 언급하는 게 무의미하다. 다만 타산지석을 삼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밝힌다. 하루는 (1996년경) 종로구 지구당 사무국장 K가 현장의 분위기를 보고하며 조직부장 등이 너무 고생하고 경비가 들어가 자기 개인비용도 쓰는 형편이니 급여를 30만원 정도 올려달라고 건의했다. 그때 조직부장의 급여가 120만원 정도였다. 그러자 나온 첫마디는 ‘뭐 하는 일 있다고 월급을 올려달라고 해, 일 없어’하고 일언지하에 묵살했다. 같은 시기 나는 국회담당 비서관으로 40여명의 기자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월 4000만원 가량이 나갔다.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선 아낌없이 물 쓰듯이 했지만 정작 자신의 수족들은 노예처럼 부리며 사람대접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운전기사 전세금 200만원 사건은 유명하다.

“7년을 모시던 운전기사가 전세금 200만원만 빌려 달라고 했다고 바로 다음날 해고한 사건은 캠프 내에 유명한 사건으로, 인격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이 된 이들은 대부분 불행한 인생들이 되고 말았다. 이 전 대통령은 결코 한번 쓴 인물을 거두질 않았다. 마치 일회용품처럼 쓰고 쉽게 버렸다. 현대에서 경영하면서 ‘노동유연성’을 그리 배운가 싶었다. 나는 요즘 이 전 대통령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

김유찬 대표는 외국인들과의 투자 협상은 항상 전문 통역이 필요하다고 전해왔다. 중국어와 영어가 능통한 93세의 중국인 통역 존 리 박사와 홍콩에서 만남을 가지고 있는 김 대표. 김유찬 대표 제공
◆“정치 못배웠지만 대신 세계를 배워”

―김유찬은 어떤 사람인가.

“흙수저 중 가장 밑바닥인 무(無)수저 출신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난하게 성장했지만 서울대와 서울대 대학원까지 자력으로 전액 장학금으로 마칠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아침은 고구마로 점심은 가끔 건너뛰고 저녁은 생략하고… 다행히 구김살 없이 자랐다. 늘 나를 키워준 조국을 위해 하늘이 주신 재주를 쓸 수 있게 되길 바랐다. 봉사의 기회를 찾고자 30대 중반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그 꿈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절대로 본받아선 안 될 인물을 만남으로써 내 인생 길이 본의 아니게 왜곡되고 질곡의 세월로 빠져 들었다. 1996년 양심선언 후 내 삶은 왜곡됐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는 내부 고발자에 대해 그 이유를 묻지 않고 무척이나 가혹하고 잔인했다.”

―지금 하는 일은.

“이 전 대통령과 결별 후 새 세계에 과감히 도전했다. 그가 대통령이 돼 온 나라를 절단내고 있을 때 나는 미국, 유럽, 중동 등 세계 각국을 다니며 잠재적인 투자자들을 만났고 한 푼의 외자라도 유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숙박비가 떨어져 공항에서 신문지 한 장을 깔고 고단한 하루를 쉬기도 했다. 다음날 5성급 호텔에 가 수조원대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티어가며 세계적인 투자자를 발굴하기 위해 정열을 불태웠다. 지금은 홍콩, 두바이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각종 대규모 프로젝트에 필요한 거액의 자금과 국제신용을 제공해주고 있다.”

―꿈이 있는가.

“대규모 자금을 조성해 공익 재단을 만들고 싶다. 국가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을 발굴해 부정부패하지 않도록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도록 훈련시켜 이들을 지도자로 키우고 싶다. 시민정치대학 설립이다. 아무도 하지 않고 있기에 한국 정치의 부패상을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내가 하려 한다. 허구한 날 ‘좌빨’ ‘우꼴’ 비난하는 이 망국적인 이분법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미래가 없다. 힘들고 소외된 자가 없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한 ‘청십자 재단’도 만들고 싶다. 국내에 꿈을 잃고 살아가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좌절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희망의 증표가 되고 싶다. 비록 이 전 대통령에겐 정치를 배우질 못했지만 나는 대신 세계를 배웠다.”(끝)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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