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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男에 "잘 들어갔죠" 카톡… 피해女 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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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0 10:57:09 수정 : 2018-06-15 17: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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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前지사에게 적용된 ‘피감독자 간음’ 혐의 입증 어려운 것이 현실 / "피해자의 평소 행동은 중요치 않아… 업무상 위력 밝히는 게 핵심"
“추행을 매번 당하면서도 그 다음날 남자에게 이모티콘을 써가며 ‘잘 들어가셨죠?’ ‘커피 먹으러 갈래요?’ 등 이렇게 카톡 하는 여자의 심리는 뭘까요?”

직장 내 강제추행 의혹을 수사하던 한 여성 검사가 남자 수사관한테 들은 질문이다. 이른바 ‘권력형 성추행’ 정황을 대하는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가 드러날 수 있는 대목이다.

여성들은 직장상사 등 권력을 가진 남자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자의 경우 좌천, 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이 두려워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나 수사기관 고발은 엄두도 못 내고 되레 더 친절하게 굴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남성들은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자가 이른바 ‘범행’의 현장에서 명확한 반대 의사를 밝히기는커녕 나중에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 내색조차 않는다면 남자 입장에선 ‘서로 좋은 감정에서 생긴 일이었을 뿐’이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권력형 성폭력에서 피해자의 ‘진의’란?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에서 법원이 2차례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검찰은 안 전 지사에게 형법상 피감독자 간음 혐의를 적용했다. 4차례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전 정무비서 김지은씨는 “(인사권자인) 안 전 지사의 일방적 지시에 반항할 수 없었다”는 입장인 반면 안 전 지사는 검찰 조사와 법원 영장심사에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주장을 폈다. 2차례의 영장 기각은 일단 법원이 안 전 지사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이헌)에 따르면 최근 공단과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조현욱)의 공동 주최로 ‘미투 이후의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 보호’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우옥영(39) 검사가 토론자로 참석해 권력형 성폭력 수사의 현실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우 검사는 안 전 지사가 받고 있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피감독자 간음) 혐의에 대해 “기습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기보다 피해자가 일정 부분 이에 응하는 형태의 모습을 띄게 되다 보니 과연 피해자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다툼이 생길 경우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혐의 인정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가해자가 평소 피해자와 호감이 있었다는 취지로 제출하는 피해자와의 통화 내역, 카카오톡 메시지, 함께 찍은 사진, 모텔 출입 폐쇄회로(CC)TV 등은 객관적으로 드러나 있는 증거자료가 되지만 피해자의 진의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그 진의만으로 모든 수사가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 두고 검경 판단도 ’제각각’

일례로 연예인 지망생인 한 여성이 기획사 대표한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들 수 있다. 피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기획사 대표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던 점, 피해자도 조연 출연을 원해 동의한 것으로 보여지는 점 등을 들어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자의 진의가 조연 출연을 받기 위한 이른바 ‘성상납’이었다고 본 것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검찰은 가해자인 기획사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조연 출연을 빌미로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한 것으로 보고 그를 구속했다. 우 검사는 “이렇듯 피해자의 진의란 수사기관에서도 각각 다른 판단이 가능할 수 있고 그 진의에 따라 사건이 무혐의에서 구속까지 변화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호할 만하지 않은 피해자는 없다”

그럼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권력형 성폭력 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업무상 감독·피감독 관계에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에 과연 업무상 위력이 존재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일이다. 우 검사는 “업무상 위력 관계가 있었는지, 피해자 역시 다른 목적으로 가해자에게 접근하여 오히려 적극적으로 성관계에 응한 사실은 없는지, 고소의 경위는 어떠한 것인지 등이 수사기관에서 분명히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 검찰의 성폭력 수사에서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나 개방적인 성관념 등은 전혀 고려 요소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가 소위 ‘보호할 만한 피해자’였는지는 사실상 수사선상에서 논의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물론 그러한 부분이 법정에서 가해자의 변호인 측에서 사건을 쟁점을 호도하기 위해 주장할 수는 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혐의 유무에 대한 판단 요소가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세미나는 여성가족부 후원으로 열렸으며 정현백 여가부 장관,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주제발표는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서혜진 변호사, 법률구조공단 울산지부 피해자국선전담 조현주 변호사가 나란히 맡았다. 법률구조공단과 여성변호사회는 지난 2016년 12월 성폭력·아동학대 범죄 피해자 등에 대한 법률지원 및 연구 협력체계 구축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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