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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슬림 관광객은 환영하지만 무슬림 편의시설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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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01 15:30:00 수정 : 2018-04-01 16: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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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외국인주민대표자 상반기 전체 회의’에서 ‘무슬림 기도실을 서울시청에 설치해 달라’는 제안이 서울시에 전달됐다. 2015년 12월 발족한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는 외국인 주민 의견을 모아 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를 상·하반기 한 차례씩 열어왔다. 이날 회의에서 외국인주민대표들은 무슬림 기도실 설치를 포함해 ‘지도·안내판 개선’, ‘외국인 유학생 통장 잔고 증명 개선‘ 등 11건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렇게 반대가 심할 줄 몰랐어요. 댓글 보면서 많이 속상했어요.” 대표자 회의에 참석했던 A씨는 무슬림 기도실 설치 요청이 언론에 보도된 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접한 반대 반응 때문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포털 기사에는 ‘기도는 집에 가서나 맘껏 하쇼’라는 비아냥부터 ‘우린 무슬림들이 남의 나라 시청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거 바라지 않습니다’라는 비난까지 수백 건의 댓글이 달렸다.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운영과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담당 부서에는 한 달 동안 수백 통의 전화가 쏟아졌다. 담당 직원 B씨는 “무슬림 기도실 설치를 반대하는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며 “민원인들이 카카오톡으로 부서 전화번호를 공유해 집단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소모임 단위부터 정책 제안에 참여해온 A씨는 “기도실에 큰 비용이나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며 “늘어나는 무슬림 외국인 수에 비해 기도실이 적어 불편을 겪는 무슬림 친구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을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슬림은 하루 5번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이슬람 성원이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방해되지 않는 조용하고 청결한 장소라면 기도를 할 수 있다. 
강원도 강릉 지역 할랄 프렌들리 인증을 받은 한 한정식당. 안승진 기자.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 관광객이 줄어든 대신 한류 바람을 타고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무슬림관광객들이 채우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 확대는 난항을 겪고 있다. 종교적 편향을 주장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조직적인 반발과 무슬림에 대한 오해가 무슬림 기도실을 비롯한 편의시설 확대를 막고 있다.

1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무슬림 관광객은 86만5910명이다. 2016년 98만5858명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평창동계올림픽과 한류에 힘입어 올해는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을 방문하는 무슬림은 한류 드라마와 K-POP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카자흐스탄 등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지역과 여행소비력이 높지만 방한 관광 인지도가 낮은 중동으로 구분된다. 한국관광공사는 전 세계 17억명의 무슬림을 잠재력이 높은 관광 자원으로 판단해 무슬림 친화 레스토랑을 지정하는 등 무슬림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주요 관광지에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기도실 설치하기 위해 ‘한류관광객 편의개선 사업 세부추진계획’을 마련했다. 2억원의예산을 들여 무슬림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명동과 동대문, 이태원 등의 관광정보센터와 민간시설 등에 무슬림 기도실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이 공개된 뒤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는 일부 개신교 단체의 반발이 이어지면서시는 기도실 설치를 잠정 중단했다. 한 시민은 ‘국민신문고 예산낭비신고센터’에 기도실 설치 사업이 예산 낭비라고 신고 접수하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무슬림 관광객이 증가에 따라 편의 차원에서 사업을 검토한 것" 이라며 “모두를 위한 기도실로 공간을 재단장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반발이 가라앉지 않아 추진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무슬림 관광객을 위해 한국관광공사가 2월초 강원도 강릉에 설치하려다 항의 전화로 무산된 `이동식 기도실`. 출처=한국관광공사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무슬림 선수들을 위한 기도실 설치 계획은 일부 개신교 단체의 반대 때문에 무산됐다. 이들은 ‘하나님 군대의 저력을 보여 줍시다. 집중 항의 전화로 지원사격해 주세요’라는 내용과 함께 한국관광공사와 강릉시청 관계자 전화번호를 적은 메시지를 전파해 반대 전화를 걸도록 종용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공공이 나서서 무슬림 관광객 편의시설을 만들려고 할 때마다 반발이 심해 민간의 자발적인 설치 확대를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슬림 기도실은 호텔과 관광지, 병원 등을 중심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전국에 151개의 무슬림 기도실이 운영 중이며 이 중 41.1%인 62곳이 호텔에 설치됐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과)는 “특정 종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떤 종교도 한국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법과 원칙을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게 하면 된다. 기독교인 일부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달라 이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교회 안에서만 해야지 교회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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