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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아프고 굶주린 아이 눈물에 도움 주셨나요"…'빈곤 포르노' 불편한 진실

자극적인 사진·영상물 등 활용/ 가난 과도한 부각… 기부 유도/“단기간 고액 모금에 큰 효과”/“인권·사생활 침해…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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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2 20:46:19      수정 : 2018-03-13 07:28:13
발달장애가 있는 2세 여아 ‘은희’가 병원에서 진료 고통에 울음을 터뜨린다. 집에서는 걷지 못해 바둥거린다. 장애로 다리를 저는 엄마는 생계를 잇기 위해 전단지를 돌린다.

최근 TV와 인터넷 등을 통해 방영 중인 한 사회복지법인의 모금 캠페인이다. 방송 화면 상단에는 ‘정기후원(월 3만원)’ 문구와 전화번호가 뜬다. 화면에 비친 모녀의 딱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은희 엄마는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돼 치료를 못해 준다”고 울먹인다. 그의 통장 잔고는 ‘4869원’이다.

이런 캠페인은 시청자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대한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하지만 역효과도 있다. 이 캠페인을 봤다는 이모(45·여)씨는 “은희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만 굳이 통장잔고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위기의 아동’ 후원을 촉구하면서 자극적인 장면을 남발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끔찍한 빈곤실태를 자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빈곤 포르노’라고 불리는 캠페인이다. 빈곤 포르노가 위기 아동이나 가족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빈곤 포르노라는 개념은 국제적으로 자선 캠페인이 급증한 1980년대에 생겨났다. 당시 아프리카 아동의 기아 실상을 널리 알리는 캠페인이 많았다. 한결같이 캠페인 영상에는 가슴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깡마른 아이 얼굴에 파리들이 달라붙은 장면이 등장했다. 충격은 컸다. 생방송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의 경우 단번에 수천만∼수억달러를 모금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모금운동을 놓고 국제기구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 지 오래다. 인권과 직결된 빈곤 문제를 선정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할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는 우려도 담겨 있다.

빈곤, 구호대상으로만 여겨… 동정심 유발하려 인권 무시


빈곤 포르노를 접한 사람은 대부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정심에 기꺼이 지갑을 열기도 한다. 국내외 수많은 구호단체가 거센 비판과 자성론에도 불구하고 빈곤 포르노를 활용한 모금운동의 유혹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생존 자체가 절박한 후원 대상자들은 벼랑 끝에 매달린 상황이라 인격과 사생활 침해를 감수하고 빈곤 포르노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빈곤 포르노가 도마에 오른 까닭

국제인권단체 등이 빈곤 포르노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빈곤 원인 해소 등 근본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을 무기력하고 절망에 빠진 수혜의 대상자로 묘사해 현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고, 지속적인 후원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동의 경우 인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세심한 보호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가 지속적으로 증진되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아동권리선언 등과도 배치된다.

노르웨이 학계와 학생들이 기부 인식 개선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 SAIH는 빈곤 포르노 반대 운동을 벌이는 대표적인 단체다. SAIH는 홈페이지(www.rustyradiator.com)를 통해 최악(rusty radiator)과 최고(golden radiator)의 모금캠페인을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한 국제구호단체가 예멘 지역에서 제작한 영상이 최악의 모금캠페인 1위에 올랐다. 3분 남짓한 동영상에는 뼈가 앙상한 아동과 여성이 각각 울부짖고 신음하는 모습,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파리가 들끓고 있는 등의 장면이 가득하다. 중간에는 미국 할리우드 스타 톰 하디가 직접 등장해 안타까운 현실을 설명하면서 “여러분의 후원으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며 모금을 촉구한다. 동영상 말미에는 어김없이 모금을 위한 전화번호, 홈페이지 등이 소개된다.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월 ○만원이면 아이를 살릴 수 있습니다’라는 구호를 강조하는 국내의 여느 모금캠페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대로 영웅 캐릭터인 ‘배트맨’을 내세워 ‘분쟁지역의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영웅물을 좋아하며 꿈꿀 수 있다’는 주제를 강조한 모금캠페인이 최고로 꼽혔다. 이 캠페인은 내전 등에 따른 굶주림과 두려움으로 힘겨운 현실이지만 꿈 속에서 만난 배트맨이 힘든 일을 도와주고 함께 놀아주면서 희망을 북돋워준다는 내용이다. 모금을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분쟁 지역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한편 이를 통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담아냈다. 무엇보다 분쟁지역의 아이들도 꿈을 꾸고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부각하는 등 단순히 구호 대상으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자성 결의에도 변화 없는 한국

우리나라에서도 빈곤 포르노에 대한 자성 움직임은 있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국제구호단체나 비정부기구(NGO) 등의 협의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2014년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프렌드아시아,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등 100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해 아프리카 지역 등 개발도상국의 빈곤·위기 아동에 대해 조명할 때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아동의 권리 보호 △빈곤의 구조적 원인과 맥락 파악 및 반영 △아동의 사생활 보호 △사후 부정적 영향 예방 등 10대 원칙을 비롯해 장애아동과 학대받은 아동, 노동 착취 아동 등 상황별 세부 수칙까지 자세히 담았다. 가이드라인은 2년 뒤 좀 더 손질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KCOC의 한 관계자는 “빈곤 포르노 등의 비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일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까지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게 한계였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을 어겨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보니 후원·구호단체 등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줄 알면서도 단기간 고액 모금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외대 김춘식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수십, 수백 가지 통계를 인용하는 것보다 납치 피해를 당한 사례 하나 소개하는 게 (대중에게) 훨씬 파급효과가 크지 않냐”며 “인간의 감성에 직접 호소할 수 있다는 면에서 빈곤 포르노는 좀처럼 근절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과거 공중파 생방송을 통해 빈곤 가정과 아동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내보내며 전화 모금을 촉구한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다. 최근까지도 정부기관과 공중파 방송이 적극 지원하는 빈곤 포르노 방식의 캠페인이 잇따랐다.

이와 관련, 한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는 “주요 모금단체가 홍보·기부전문가를 집중적으로 늘려 기부 마케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경쟁을 부채질하는 측면도 있다”며 “빈곤 포르노가 확산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부단체 간 빈익빈부익부가 심해지는 것도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빈곤 포르노 방식을 악용한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1대1 아동결연사업 등으로 모은 기부액을 횡령한 ‘새희망씨앗’ 사건이나 딸 치료를 빙자해 모든 거액의 성금을 유용한 ‘이영학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빈곤 포르노 의존성을 줄이지 않는다면 기부 문화 확산은 물론 중소 단체들의 재정 여건 개선 효과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아동의 인권이나 사생활 등의 가치보다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주는 게 시급하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빈곤 포르노 문제)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기부·자선활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심어지도록 어릴 때부터 관련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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