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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해상초계기는 무조건 미국제?"…유럽, 파격 조건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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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1 06:00:00 수정 : 2018-03-11 10: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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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무기를 도입할 때 드러나지 않는 규칙이 하나 있다. 한미 동맹을 고려해 미국과 동일한 무기를 갖춰야 한다는 불문율이다. 미국에서 첨단무기를 구매할 때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계약 방식이 적용돼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도 절충교역(무기 판매 국가가 구입국가에 기술이전이나 부품발주 등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지속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럽과 이스라엘 등 제3국 방산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제대로 진출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미국 해군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이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 비행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무기도입 사업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AW-159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 A330 MRTT 공중급유기,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 유럽 무기들이 잇달아 우리 군에 도입되고 있다. 미국 보잉 P-8A 포세이돈과 스웨덴 사브 소드피시가 경합 중인 해상초계기 2차 사업에서도 이같은 기류가 반영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 사브 “1조원 규모 절충교역 가능”

해상초계기 2차 사업에 뛰어든 스웨덴 사브는 “한국 정부와 군이 요구하는 사항은 모두 충족시키겠다”며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사브 관계자는 7일 “기술이전, 한국산 부품 사용, 한국 무기 및 장비 탑재, 한국 내 생산 등 모든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이 가능하다”며 “다 합치면 1조원 규모의 절충교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 사브 소드피시 해상초계기가 해안을 날며 정찰을 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사브 제공
‘절충교역 1조원’이라는 기준은 공군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A330 MRTT 제조사인 유럽 에어버스는 방위사업청과 협의를 거쳐 절충교역 비율을 사업 예산 대비 51.6%로 확정했다. 해상초계기 2차 사업의 총사업비는 약 2조원. 공중급유기 사업 절충교역 비율을 적용하면 1조원 규모의 절충교역 기준이 나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업체보다 한국 진출이 늦은 유럽 업체로서는 1조원 수준의 절충교역을 제안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절충교역은 규모 못지않게 질도 중요하다. 독자적인 무기개발 및 생산능력을 갖춘 우리나라로서는 국내 방위산업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대한 절충교역이 필요하다. 사브 관계자는 “사브가 축적해온 항공, 전자 분야 기술을 이전할 용의가 있다”며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제작 관련 기술도 이전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유럽 방산업체들은 미국 업체보다 절충교역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AESA 레이더 기술의 경우 자사 제품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 이전 대상에서 제외하려 시도해왔다.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한국형전투기(KF-X) AESA 레이더 개발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사브의 AESA 레이더 기술 이전이 실현되면 국내 개발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국내 방산업체가 생산하는 무기나 장비를 탑재하기 위한 준비도 진행중이다. 사브는 국내 방산업체 LIG 넥스원과 해상초계기 사업 본격화를 염두에 두고 양해각서(MOU) 체결 등 공동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IG 넥스원 관계자는 “관련 제안을 받아 협력 방안을 논의 및 검토하는 단계”라면서도 사업을 주관하는 방위사업청을 의식한 듯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했다. 사브 관계자는 “항공, 지상 분야를 포함한 임무체계와 무장 및 센서 통합, 후속군수지원 등의 분야에서 상호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며 “절충교역 이행단계에 접어들면 LIG 넥스원에 우리의 기술을 이전하고 공동생산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술이전과 더불어 국산 무기 장착도 거론된다. LIG 넥스원은 잠수함 공격용 청상어 어뢰를 생산하고 있다.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에 쓰이고 있는 청상어 어뢰는 소드피시에도 탑재가 가능하다. 한국형데이터링크 시스템 등 지휘통제체계 탑재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군 초계함 원주함에서 청상어 경어뢰가 발사되고 있다. 해군 제공
사브 관계자는 “훈련기를 자체 개발한 한국이 언제까지 해상초계기를 외국에서 직수입할 것인가”라며 “한국 내에서 해상초계기를 생산해 정비하면서 성능도 개량하면 전력 유지와 예산 절감은 물론 한국 항공우주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린 이를 도울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 사업 입찰 앞두고 잡음 불거질 조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 내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 사브는 “한국의 요구조건에 부합하는 기종은 소드피시”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사브는 지난달 28일 아랍에미리트(UAE)가 주문한 글로벌 아이 조기경보통제기 1호기를 완성해 시험비행에 들어갔다. 글로벌 아이는 소드피시와 동일한 캐나다 봄바디어의 글로벌 6000 비즈니스 제트기를 사용한다. 탑재 장비도 많은 부분에서 동일한 것을 쓰고 있다는 게 사브의 설명이다. 사브 관계자는 “글로벌 아이와 소드피시 장비 공유율은 83.6%에 달한다”며 “나머지 장비는 대잠수함 작전용인데, 사브가 다른 해상초계기를 개발하면서 이미 확보한 장비를 사용하므로 신뢰성이 입증됐고 추가 개발비나 시간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주문한 조기경보통제기 글로벌아이 1호기. 소드피시는 글로벌아이에 대잠수함 장비를 장착할 예정이다. 사브 제공
사브는 소드피시의 가격 경쟁력도 강조하고 있다. 사브측은 “정확한 단가는 언급하기 힘들다”면서도 “한국 정부의 사업비 규모라면 소드피시 7~8대 구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해군이 운용중인 P-3CK 16대에 소드피시 7~8대가 추가되면 동해와 서해, 남해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사브의 이같은 입장은 ‘소드피시는 존재하지 않는 기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경쟁력을 갖춘 기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보잉은 “사업 참여 가능성이 제기되는 기체 중 검증된 것은 P-8A뿐”이라며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에 의한 수의계약을 선호하고 있다. 방위사업청도 “사브측이 소드피시 개발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보잉 수의계약 가능성을 열어놓는 분위기다. 국외 구매 무기 도입사업에 참여하려면 검증된 무기이거나 개발이 진행중인 무기 가운데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사브가 “개발계획서 제출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하자 방위사업청은 뒤늦게 이번주 초 사브에서 기술정보요구서(RFI)를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해군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이 구름을 뚫고 비행하고 있다. P-8A는 우리나라 차기 해상초계기 기종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이같은 일이 반복되자 사브측의 위기감도 강해지고 있다. 사브측은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F-35A로 뒤집었지만, 방위사업청은 차기전투기(F-X) 사업 당시 서울 에어쇼에 실제 크기 모형조차 전시되지 않았을 정도로 실체가 없던 미국 보잉 F-15SE를 선정한 전례가 있다”며 “방위사업청이 미국 방산업체에 편향된 것이 아니라면, 소드피시가 F-15SE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상초계기 2차 사업에 대한 방위사업청과 보잉의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어왔다. 여기에 2015년까지 전(前)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장을 지낸 예비역 공군 중장이 보잉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방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관리본부장은 무기도입 사업 관리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군 전력증강 사업 관련 정보를 폭넓게 접할 수 있는 요직이다. 보잉측은 “법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3년 전까지 상관이었던, 방위사업청 동향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거들고 있는 업체를 방위사업청 직원들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지는 미지수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이 지난해 1월 정부 과천청사에 입주하면서 현판을 걸고 박수를 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이외에도 일부 해군과 공군 출신 예비역 장성들이 보잉과 연관되어 있다는 설, 국방부 장관실에서 방위사업청의 해상초계기 2차 사업 추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설까지 돌면서 해상초계기 2차 사업을 둘러싼 군 안팎의 분위기가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1990년대부터 진행됐던 KF-16, F-15K, F-35A 전투기와 E-737 항공통제기 도입 사업은 추진과정에서 숱한 잡음을 낳았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정무적 판단’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공군참모총장이 갑자기 물러나는가 하면, “돈보다 동맹이 우선”이라며 미국이 우리 군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방위사업청이 선정한 기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기면서 사업 규모가 뚜렷한 이유 없이 축소되기도 했고, 감사원이 수개월씩 감사를 진행하면서 온갖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원칙대로 처리한 공중급유기 사업은 유럽제 선정이라는 이변이 일어났음에도 뒷말이 없었다.

방위사업비리는 단순히 향응이나 일자리를 제공받고 편의를 봐주는 것만이 아니다. 국익 창출을 극대화하는 길을 버리고 ‘정무적 판단’을 하는 것도 비리이자 직무유기다. 곧 다가올 해상초계기 2차 사업 입찰 과정을 원칙과 공정성에 입각해 진행하는 것이 현 정부가 강조하는 방위사업 비리 척결과 국방개혁 2.0을 실현하는 길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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