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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만에 꽃이 된 ‘이름없는 의병들’

입력 : 2018-02-28 19:24:00 수정 : 2018-02-28 19: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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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 순국 김법윤·박영춘 등/일본 문헌 찾아 인적사항 발굴/독립유공자 추서 공적 기리기로
을사늑약(1905년) 이후 전북 완주군 고산면과 임실군 일대에 의병이 출몰해 기병과 경찰관을 급파했다는 천안 분대장의 보고서.
전북도 제공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1905) 이후 일본군에 맞서 싸운 무명의 전북 출신 의병 800여명에 대한 신원이 추가로 확인됐다. 광복회 등은 목숨을 바쳐 일제에 저항한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추서해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기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광복회 전북지부는 최근 전북도,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과 함께 ‘한말 전북의병사 연구조사’를 진행해 전북지역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무명의병 831명의 신원을 새로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들 무명의병은 각종 의병 자료와 일본 측 재판기록 등 문헌을 바탕으로 찾아냈다. 그동안 국가기록물 등에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름이 있으나, 구체적인 인적사항이나 활약상 등이 없어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받지 못한 447명과 현재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항일운동 참여자 384명이다. 이로써 그동안 항일운동에 참여한 전북지역 출신 의병들은 모두 125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생존자들도 살인, 강도, 내란 주동자 등으로 낙인찍혀 모진 고초를 겪다 숨졌다.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전주 출신 김법윤(1889~1908), 김제 출신 박영춘(생몰년 미상) 의병이 대표적이다. 김법윤 의병은 19세의 나이로 충남 공주에서 동지들을 모아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다 이듬해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그의 생전 직업은 상업으로 확인됐다. 박영춘 의병은 대장장이 출신으로 전북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에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방에서 순국한 의병도 적지 않았다. 익산과 군산 일원에서 무장투쟁 중 체포된 여학봉(생몰년 미상·익산), 의병자금을 모으다 임실에서 붙잡힌 제지업자 최봉갑(〃·순창) 등이 그들이다.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무명의병도 수백명에 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신원과 활약상을 찾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광복회와 전북도, 전주대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은 의병 발굴 결과를 토대로 동학농민혁명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전북의병사를 집대성한 책자 ‘가장 치열했던 한말 전북의병사’를 최근 펴냈다.

전북도는 이번에 새로 확인된 무명의병을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후속 조사를 거쳐 항일의병 신원과 활약상을 발굴하기로 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그동안 기록물 발굴작업으로 항일의병 부대장급 이상은 대부분 공과를 확인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으나 평민이 주축이 된 일반 의병은 연구조사 등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향후 연구조사가 활성화하면 이름없는 순국 애국지사들을 보다 많이 발굴하고 그에 합당한 예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는 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순국선열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을 1일 오전 10시 전북도청 공연장에서 개최한다. 군산시내 일원에서는 3·5만세운동을, 정읍 태인시장과 김제 원평장터에서는 3·1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시가행진 등을 벌인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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