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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미투 운동’의 진정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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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6 21:10:23 수정 : 2018-02-06 23: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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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서도 용기 있는 폭로 이어져 / 개개인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 받아야 지난해 타임지는 심사숙고 끝에 올해의 인물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한국에서도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를 계기로 그동안 꾸준히 지펴 온 ‘미투 운동’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미투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티핑 포인트란 2000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맬컴 글래드웰의 책 제목으로 특정 아이디어나 경향, 사회적 행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마법의 순간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첫째는 빠른 속도로 번져가는 전염성이 있다는 것, 둘째는 작은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나 경향이 엄청난 결과와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셋째는 이러한 변화가 마치 섭씨 100도가 되는 순간 끓기 시작하는 물처럼 극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글래드웰 자신은 티핑 포인트 중에서도 세 번째인 변화는 극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세 가지 특징이 긴밀히 연계돼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극적인 변화 시점이 오기 직전까지 수많은 징후가 서서히 축적된다는 점, 더불어 일단 티핑 포인트에 이르면 이념이든, 가치든, 행동이든, 규범이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트렌드로 정착하게 되고 향후엔 주류 문화로 정착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투 운동도 물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미국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도 상륙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우리 안에서도 의미 있는 저항과 용기 있는 폭로가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기억을 더듬어도 유명 연예인의 성추행, 노 정치인의 성희롱, 문인사회 내부의 관례화된 성희롱·성추행·성폭행,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여배우 폭행·성추행 등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 기억 속에서는 스러져갔으나 매 순간 부당한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고자 했던 이들의 희생과 헌신적 행동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서지현’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미투의 외침이 정치적 편가름에 이용되거나 희생자의 진정성이 왜곡되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남성=가해자’요 ‘여성=피해자’라는 이분법에 따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악의적 공격을 일삼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지금까지 선례에서 드러나듯 2차, 3차 피해가 발생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반드시 근절해야만 한다.

대신 지금의 미투 운동이 진정한 의미의 티핑 포인트로 자리매김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인지 깊은 반성과 성찰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제기된 미투는 그 누구보다 법에 정통한 법조인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고려할 때, 법 제도만으로는 미투를 근절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법 못지않게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을 묵인하거나 조장해온 조직문화를 송두리째 전환하는 작업이 반드시 요구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권력과 지위를 무기로 부하 직원이나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함부로 희롱하고 추행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을 관행이요 관례라 인식해온 후진적 행동양식도 모조리 버려야 할 대상이다. 이는 하루 이틀 사이에 완수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의 문화가 되고 몸과 마음의 일부가 돼야 완성될 수 있는 작업임을 그 누가 부인하겠는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성희롱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본 결과 개인적 차원에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수치심은 물론이요, 자존감을 깊이 손상당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동시에 인간을 향한 불신이 오래도록 자리하게 됨을 확인했다. 지위의 높고 낮음, 권력의 많고 적음, 성(性)의 남녀를 불문하고 회식자리에서든, 영화 촬영 현장에서든, 장례식장에서든, 개개인이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문화가 공고히 뿌리내릴 때 오늘의 미투 운동은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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