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품을 찾기에 다소 쑥스러운 나이가 된 지금은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를 하면서 안정을 찾는다. 업무를 마치고 자기 전에 잠깐만 한다는 것이 어느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게임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까지 섭렵한 수준이 됐다. 접속 후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다른 역할을 맡는 ‘또 다른 나’를 보면 내일 걱정으로 오늘의 머리가 복잡한 나날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몬스터들을 때려잡으며 인간 고유의 ‘파괴 본능’을 해소하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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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수 체육부 기자 |
이처럼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MMORPG 열풍이 부는 데는 가상공간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삶의 애환이 담겼다. 직장 내 중요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인간관계가 꼽힌다. 게임 내에도 ‘연맹’이나 ‘혈맹’ 등 집단시스템이 존재해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곳에서 밉보이지 않으려면 일정시간 게임을 플레이해 연맹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현실과 비슷하게 ‘호혜성’을 기반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게임상에서는 기본적인 규칙만 지키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더 이상의 노력을 요하지 않는다. 나이, 신분에 따른 고하(高下)가 없어 상대방의 비위를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 또한 언제든지 게임을 종료하는 것으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한없이 가볍다는 게 매력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가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요새 직장인들은 연차도 마음 놓고 쓰지 못할 만큼 일 걱정이 태산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11월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차를 모두 사용한 직장인은 22.3%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직장인들은 만성적인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한다. 쉬면서도 일 생각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MMORPG에 접속해 가상공간의 역할에 몰두하다 보면 업무를 잊게 된다. 치통이 신경 쓰여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다가 다른 곳에 더 큰 자극이 오면 일순 신경이 옮겨가는 것과 비슷하다.
퇴근 후에도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단순히 철없는 키덜트 현상으로만 봐야 할까. 휴식도 없이 쉼 없이 달려온 직장인들에게 MMORPG는 어머니의 품처럼 수시로 안길 수 있는 어른들의 쉼터나 다름없다. 오늘도 바글바글한 게임 속 캐릭터들은 자유를 찾아 떠돌고 있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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