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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대국' 길을 묻다] 불편한 역사도 품은 베를린…유럽관광 일번지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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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2 06:00:00 수정 : 2018-03-12 14: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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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 베를린 / 시내 한복판에 유대인 희생자 추모공원 / 분단상징 베를린 장벽 원형 그대로 보존 / 비밀경찰·친위대 건물 박물관으로 변신 / 전범 국가로서의 참회·반성 공간 조성 / 대부분 무료입장… 부담 없는 방문 유도 / 2016년 3106만명 찾아…절반이 외국인 / 보고 즐기는 관광 넘어 지적 욕구 채워져 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나라와 도시들의 매력포인트는 다양하다. 마주한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천혜의 자연경관이나 독특한 양식의 풍경과 고유 문화, 색다른 맛의 음식과 체험 등 보고 즐길 만한 요소가 많을수록 인기가 좋다. 여기에 단순히 보고 즐기는 관광을 넘어 지적 욕구까지 채울 수 있다면 ‘가고 싶은 1순위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그런 면에서 독일 베를린은 세계적으로 관광 경쟁력이 센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저지른 나치 독재정권의 심장부였으며, 종전 후 동서냉전과 동서독 분단의 살벌함을 오랫동안 직면했던 도시의 역사적인 강렬함 때문이다. 독일 연방정부와 베를린시가 ‘불편한 역사’의 흔적들을 관광상품화하지 않았지만 베를린이 유럽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16년 기준 베를린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은 3106만여명(숙박인원 기준)으로 이 중 외국인 비율이 45.6%다. 

나치정권 당시 학살당한 유럽지역 유대인 희생자 600만명을 기리기 위해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조성된 추모공원 모습.
베를린=이강은 기자
◆역사 반성과 참회의 ‘기억문화’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

지난해 12월 2일 오전 9시30분쯤, 독일의 행정·정치·외교 중심가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공원은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독일 연방의회가 나치정권 당시 학살을 당한 유대인 희생자 600만명을 기리려고 1999년 설립을 의결한 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2005년 축구장 2.5배 크기의 광장에 2711개의 콘크리트 추모비를 세운 곳이다. 정식명칭은 ‘학살된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위한 기념공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다. 우리로 치면 수도 한복판인 서울 광화문광장과 주변 일대를 모두 추모공원으로 만든 셈이다.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참회하고 무고한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는 독일의 의지가 엿보인다.

지하에 마련된 홀로코스트 기념관 초입에도 유대인 출신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건 일어났던 일이고,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해야 할 핵심이다”(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 this is core of what we have to say.)라는 어록이 선명했다. 기념관 관계자는 “오로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어서 가해자나 다른 역사적 사안보다 희생자들의 이야기와 기록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며 “이런 공간을 도심에 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홀로코스트가 생소하거나 대충 아는 경우가 많은 방문객들에게 유익한 장소”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독일은 국가적으로 과거 나치 독재와 동독 공산주의 시절의 잘못을 참회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연방의회가 18년 전 ‘책임을 인식하고, 역사 반성을 강화하고, 기억을 깊이한다’는 제목으로 ‘기억 장소 콘셉트’를 통과시킨 게 대표적이다. 이는 참혹했던 시대와 연관된 장소들을 보존, 발굴해 그 당시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전시와 연구지원 활동 등을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가급적 많은 사람이 기억 문화 공간을 부담 없이 방문하도록 대부분 무료입장이다. 연방정부가 전국의 기억 문화 공간에 지원하는 자체 예산만 지난해 기준 2234만유로(약 286억원)다.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재발 방지 교훈으로 삼기 위한 노력이지만 이들 기억 공간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베를린만 봐도 그렇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공간을 비롯해 동서 냉전과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의 자취가 남은 베르나우어 거리와 이스트사이드갤러리, 체크포인트 찰리, 브란덴부르크 문도 관광명소다. 나치정권 당시 비밀경찰 게슈타포와 친위대 슈츠슈타펠(SS)의 본부 건물로 악명이 높았던 ‘테러의 지형’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독일인 마이어 라우라(32·여)는 “베를린에 여행 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홀로코스트와 동서독 분단 등 역사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관광객들의 그런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3㎞ 길이의 베를린 장벽에 많은 화가의 그림이 그려져 관광 명소가 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지난해 12월 1일 한 외국인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베를린=이강은 기자
독일 분단 당시 동서 베를린을 오가는 국경의 검문 초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 소련과 연합국(미국·영국·프랑스)이 대치했던 시절 을씨년스러운 모습(사진 왼쪽)과 통일 후 관광명소가 돼 붐비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베를린=이강은 기자, 베를린장벽재단 제공(에드문트 카스페르스키 촬영)
◆독일 ‘기억 문화’의 상징, 베를린장벽

앞서 전날 오전 10시쯤 찾아간 베르나우어 거리 주변도 원형 그대로 보존된 베를린장벽을 보러온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베를린장벽은 소련과 동독 정부가 동독 시민들의 자유를 향한 탈출을 막고자 1961년 8월 155㎞에 이르는 철조망을 친 뒤 벽으로 대체하다 마지막에 3.6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일부 구간은 철조망)를 세운 것이다. 이후 28년간 서베를린을 동독 내의 고립된 섬처럼 에워쌌던 장벽의 붕괴(1989년 11월)는 냉전 해체와 동서독 통일의 기념비적 사건이 됐다. 철근 콘크리트 자체보다도 역사적 무게감이 엄청난 장벽인 셈이다.

2008년 설립된 베를린장벽재단의 마케팅·홍보 책임자 베르거 한나는 “베를린장벽에 관한 한 독일 연방정부와 베를린시의 가장 중심적인 곳이 이 거리의 ‘기억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단은 베를린장벽과 동서 냉전, 동서독 분단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적인 흔적들을 보존해 전달하는 동시에 당시 (장벽을 넘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덧붙였다. 재단의 주요 관리대상은 베르나우어 거리의 장벽과 장벽기념관, 방문자센터 등이며,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로 유명한 이스트사이드갤러리(1.3㎞) 장벽 역시 관할 지자체가 관리상 어려움을 호소해 재단이 맡게 될 공산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베를린 중심을 갈랐던 장벽은 하마터면 동서독 통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동서베를린 주민 모두 장벽을 지긋지긋하게 여긴 데다 도시개발 문제와도 맞물려 1990년대 초반 무차별 파괴됐다. 상업적으로 팔려 나가거나 건설현장 자재로도 쓰였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들어 시민사회가 장벽 보존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고 ‘끔찍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10년쯤 지나 결국 베를린시와 의회가 ‘베를린장벽을 기억하기 위한 종합 콘셉트’를 만들고 전담기관인 베를린장벽재단을 설립한 배경이다.

재단 측은 관광청 등 시 당국은 물론 역사 단체와 장벽 관련 연구·조사·보존활동을 해 온 민간협회, 교회 등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장벽이 극히 일부만 남아 장벽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공간이 더 소중해졌다”며 “베를린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게끔 장벽 관리에 대한 기본철학도 ‘분산화’”라고 소개했다.

남북한이 하나가 되면 독일보다 더 처절했던 분단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베르거 한나는 “독일과 한국의 사례를 단순비교할 수 없지만 역사적인 흔적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그 역사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베를린=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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