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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氣 살리자] 명문대 → 교사·공무원…'꿈'은 사치가 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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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1 21:33:22 수정 : 2018-03-02 20: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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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아닌 진학만 가르치는 학교… 미래 희망까지 ‘판박이’ / 대학이 ‘미래’가 된 교실 / 명문대 못 가면 낙오자로 전락 / 옆자리 친구들 ‘경쟁자’ 만들어 / 좋아하는 일보다 ‘안정’만 생각 / 선호직업도 10년째 교사가 1위 / ‘꿈’꿀 수 있는 기회 줘야 / 고교생 40% 하루 6시간 못 자 / 부족한 수면은 우울감 등 조장 / 과도한 학습 부담과 입시 때문 / “청소년들 마음 돌볼 대책 필요”
아동학대, 학교 폭력, 과도한 학습 부담 등 청소년의 안전을 위협하고 기를 못 펴게 하는 적폐가 즐비합니다. 청소년들의 문제는 곧 부모와 국가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하며 꿈을 심어주는 일이 시급합니다. ‘청소년 氣 살리자’ 시리즈는 청소년들의 육성을 있는 그대로 싣고 전문가들의 진단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발언대’가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될 청소년들이 원하는 직업을 얻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자신을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진로에 관한 수업을 추가로 듣고 나의 진로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어 “학교에서 진로 관련 수업이 생기면 돈이 없어 사교육을 못 받는 학생들도 불리하지 않게, 모두가 공평하게 같은 조건에서 꿈을 선택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고 썼다.

이 학생의 글에는 학교가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곳이 아닌 명문대 진학을 위한 플랫폼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로’보다는 ‘진학’에 초점을 맞춘 학교에서 옆자리의 친구가 경쟁자가 되고, 명문대에 진학하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을 받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이 ‘꿈이 빈곤해지고 있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10년째 선호직업 1위 ‘교사’…대세는 ‘안정’

손재주가 좋은 서연(13·여)이의 꿈은 설탕공예가다. 설탕을 이용해 꽃이나 케이크 장식품, 소품 등을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이다. 지난해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설탕공예를 우연히 접한 뒤 그 매력에 빠졌다.

서연이 엄마 임은영(45)씨는 그런 서연이가 기특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크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서연이가 중간에 꿈을 포기하게 될까봐서다. 진로교육을 위한 자유학기제가 운영되고 있다고 하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 없어 ‘가위바위보’로 인원을 나누거나 수업이 개설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임씨는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직업을 찾도록 학교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런 여건이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임씨의 걱정처럼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기는 힘든 걸까.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꿈은 행복보다는 ‘안정’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31일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초·중·고교 1200곳의 학생·학부모·교사 등 5만14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10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선호직업은 ‘교사’였다. 교사는 2007년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인기다.

서울 마포구의 한 여고에 다니는 김수진(17·가명)양은 “어렸을 때는 선생님을 가장 많이 접하니까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만큼 안정적이고 방학이 있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교사에 이어 공통적으로 선호한다고 밝힌 직업 역시 운동선수, 경찰, 간호사, 군인 등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법조인이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상위 10위 내에 포함되지 못했고, 의사 역시 고등학교 순위에서 빠지는 등 특정 직업 쏠림 현상은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해당 직업의 사회적 위상이 전과 같지 않고 과거와 같이 고소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진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IMF 이후 학생들은 꾸준히 공무원, 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게 됐고 최근 양극화 현상의 가속화와 맞물려 과도한 안정성을 추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잠을 못 자는 아이들, 꿈을 꿀 수가 없다

‘하루 평균 6시간 6분.’ 서울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의 평균 수면 시간이다. 전국의 고등학생 10명 중 4명은 하루 6시간도 채 자지 못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전국 초·중·고등학생 8만2883명을 대상으로 한 2016년 교육부의 학생 건강검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43.91%가 하루 6시간도 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발표된 국내 성인 평균 수면시간인 6시간 24분보다 짧은 것이다.

부족한 수면은 우울감으로 이어지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같은 상황의 원인은 단연 과중한 학업 부담과 입시준비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모(17)군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 대학입시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물론 친구들 모두 수행평가, 수시 과제, 내신 등을 완벽히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고3이 되는 박모군은 몇 차례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극적으로 발견돼 현재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꿈꾸라는 어른들의 주문은 사치에 가깝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2년 진로교육실태조사(중고생 1072명 대상)에 따르면 장래희망이 ‘없다’고 답한 학생은 중학생 34.4%, 고등학생 32.3%로 집계됐다.

김도연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장은 “삶에 치여 바쁜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돌볼 틈이 없는 것도 문제”라며 “만성우울증과 사회적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지속적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체계와 제도를 정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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