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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세계문학상] “지루한 이야기는 싫어… 문장 짧게 쪼개 리듬 입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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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1 06:00:00 수정 : 2018-01-31 2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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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스페이스 보이’ 박형근 / “이렇게 살아라” 가르치려하기보다 /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 ‘힐링’ / 생생하고 잔인한 청춘이야기 쓸 것 “지루하게 쓰는 건 싫어요. 문장을 일부러 미니멀하게 쪼개서 리듬이 느껴지게 하는 데 굉장히 신경을 쓰거든요. 성격상 차분한 문장 읽는 거 좋아하지 않아서 책도 많이 보지 않아요. 영화도 거의 안 봐요. 내가 선택한 영화가 재미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두 시간이나 어떻게 앉아 있어요? 나 같은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 겁니다.”

열네 번째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자 박형근(37)은 양쪽 귀에 검은색 티타늄 피어싱을 매달고 편집국에 나타났다. 건장한 체격과 굵은 얼굴선에서 만만치 않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상이다. 대상 수상작 ‘스페이스 보이’는 얼핏 랩 같은 소설이다. 짧은 문장들이 잦은 행갈이와 함께 리듬를 타고 이어진다. 이런 호흡으로 200자 원고지 800장에 육박하는 장편을 한 줄에 꿰어낸 사실이 이채롭다. 우주에 다녀온 한 남자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마지막으로 속물적인 현실과 타협할지 고민하는 이야기다.

랩 같은 문장으로 장편을 써서 14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박형근씨. 그는 “문장들을 잘 배치해서 기가 막힌 리듬을 만들어내면 행복하다”면서 “성격이 급한 나 같은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우주에 갔지만 사실 외계인에 의해 자신의 뇌를 실험당한 것이죠. 우주는 지구와 똑같은 환경이었고 그건 자기의 기억이에요. 이 친구는 어렸을 때 전자기타를 쳤는데 우주에서 그 기타를 칠 때마다 숲이 형상화되죠. 뉴런과 뉴런 사이 전기 자극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뇌처럼 기타를 칠수록 세계가 확장됩니다. 그는 진짜 우주 생활을 한 게 아니라 그 자극으로 다시 찾아낸 기억 속에서 사랑을 보게 되는 거죠.”

소설 속 남자는 우주에서 샤넬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라는 이름의 외계인을 만난다. 외계인은 존재하지만 뛰어난 문명으로 지구인에게 드러나지 않을 따름이라는 ‘페르미 패러독스’의 세 번째 가설을 남자는 믿는다. 외계인은 남자의 뇌 속을 디자인하면서 지구로 돌아갈 때 어떤 상태로 기억을 남겨둘 것인지 거래를 한다. 사랑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 돌아온 남자는 지구에서 스타가 되지만 끝내 그 사랑을 되찾을 것인지는 독자들이 읽어야 할 몫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책 제목만 보고 독후감을 써내도 상을 받았고, 이후 특별한 독서 경험도 없는데 글만 쓰면 인정을 받아 실기만 보고 뽑는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우연히’ 들어갔으며, 대학 시절에도 특별히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그는 툭툭 던지듯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에서 기타를 쳤고 축구 보는 걸 즐겼다. 굳이 읽은 소설들을 꼽으라면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무라카미 류나 하루키와 대학시절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파이트 클럽’의 미국 작가 척 팔라닉 정도를 거론할 수 있다고 했다. 성장기에 글쓰기보다 뭔가 일을 꾸미는 걸 많이 했는데 이런 행위를 언어로 옮기면 그대로 소설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는 반문한다. 이번 수상작에서도 철학자 비트겐 슈타인의 “언어의 한계가 사물의 한계”라는 논리를 요긴하게 활용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언어가 인간 그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언어 밖으로 나가면 기억에 저장되지도 않아요. 언어체계로 편집돼서 저장되거든요. 이 소설을 쓰면서 뇌의 기능에 대해 많이 알게 됐죠. 사실 이 소설 주인공에게 사랑은 어쩌다 접하는 것이고, 어쩌다 끝나는 것이에요. 사랑이 거창한 건 아녜요.”

2011년 한국디지털문학대상에 ‘20세기 소년’이 당선돼 작가 타이틀을 얻었고, 그해 ‘네이버 캐스트’에서 신인작가 소개의 일환으로 단편을 청탁했을 때 ‘스페이스 보이’ 시놉시스를 보냈다. 이후 특별히 글쓰기의 비전이 보이지 않아 친구와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다 지난해 봄, 아침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리듬을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이 소설을 6개월에 걸쳐 장편으로 완성해 처음 응모했다. 부모에게도 아직 수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쿨한 ‘20세기 소년’도 ‘스페이스 보이’ 말미에는 “이 엿 같은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랑”이라고 썼다.

“정작 바로 곁에 있는 20~30대 우리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없는 것 같아요. 힐링 서적은 많지만 어떻게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힐링이 되거든요. 진짜 생생하고 잔인한 20대 청춘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줄거리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우주인이 되어 우주로 떠나게 된다. 그저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난 매일 빙글빙글 돌며 무중력 상태를 경험했지. 눈 떠 있는 시간의 반은 물속에 잠겨 있었던 거 같아. 현기증, 메스꺼움, 구토 그래도 이 모든 게 견딜 만했어. 왜냐면 현실에 돌아가는 거만큼 구역질나지 않았거든.”

로켓이 발사되고 ISS에 도착한 그는 섬광과 함께 정신을 잃고 우주가 아닌 지구와 똑같은 곳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놀랍도록 지구와 똑같은 곳에서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을 외계인라고 소개하며 이곳은 지구의 미의 기준에 따라 꾸며 놓은 거대한 세트장이라고 말한다. 자신 또한 지구의 미의 기준에 맞춰 변한 것뿐이라고. 그리고 지구를 본뜬 세계에 떨어진 주인공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사라진다.

“앞으로 이 세계에서 편하게 지내길 바라네. 이 세계에 네가 모르는 말은 없으니까. 스페이스보이 이 말을 기억해? 언어의 한계란 사고의 한계다.”

이후 주인공은 이 낯선 곳에서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귀신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읽는 외계인과 그가 말한 익숙한 것들이 세계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익숙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것들. 낯설었던 세계는 주인공이 전기숲에서 전자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점점 명확해져 간다. 그는 전자기타 사운드가 뇌에 가하는 전기자극이며 숲의 나무들은 그 자극을 받는 뉴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전기자극으로 치매환자의 기억을 살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비로소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과 곳곳의 장치들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되고 어쩌면 이 세계가 자신의 뇌 속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번화한 도시가 돼버린 이곳을 떠나 세계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험난하고 구불구불한 고랑과 이랑을 지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익숙한 향기들이 그녀와 함께한 모든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그가 여기에 온 이유 말이다.

“너 그거 알아? 모든 감각은 시상을 거치는데 후각신경만 기억의 뇌로 바로 연결되는 거. 그래서 냄새가 기억을 재생시키는 거래.”

그와 칼 라거펠트는 해마를 형상화한 끈적한 늪과 찢어진 그물(실제 뇌의 그물처럼 생긴 망상활성화계)에 들어가 기억을 지우려 한다. 그는 외계인 존재와 문명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모든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 지구로 귀환한다. 지구로 돌아간 주인공은 이미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의 팔로어는 천만이 넘어가고 대중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그는 우주에서 되살아난 기억에서 무엇을 본 걸까? 그는 이제 자신이 싫어했던 가식적이고 속물화된 지구의 영웅이다. 톱스타와 열애설까지 터지는. 그리고 그는 어쩌면 우주에 간 이유였는지도 모르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과연 그는 그의 사랑을 되돌릴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망각되지 않을 기억 안에서 살게 될 것인가.

박형근
△1981년 서울 출생 △2004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11년 ‘20세기 소년’ 한국디지털문학대상 수상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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