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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6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IIHF 아이스하키 여자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 앞서 내빈과 대표 선수들이 퍽드랍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북한 대표 김금복, 르네 파젤 IIHF 회장,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한국 대표 이규선. 연합뉴스 |
하지만 단일팀 구성을 놓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4년간 준비해온 선수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불공정한 일”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1990년대 초 남북 단일팀과 2000년대 남북 공동응원 당시 여론이 우호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바람 앞의 촛불을 지키듯 남북대화를 지켜달라”고 호소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내려앉는 등 반응은 냉담하다.
스포츠가 남북 대화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시기는 지난 것일까. 남북관계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민족의식 약화에 독재국가 이미지…“통일보다 현상유지”
수년 전부터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서서히, 냉정하게 변화해왔다.
아산정책연구원이 2014년 9~10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를 이용해 조사를 한 결과와 각종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2015년 1월 발간한 ‘한국인의 대북, 통일인식 변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이미지로 한민족과 통일을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응답자의 11%로 전쟁과 핵무기(37.5%), 독재국가(19.4%)보다 훨씬 낮았다. 북한을 한민족으로 보는 시각 대신 안보위협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높았다. 북한 주민에 대한 친밀감은 미국인, 중국인보다 낮았다. 경제상황이 나빠져도 통일을 서둘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43.9%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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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 방남 이틀째인 22일 오전 조원진 의원 등 대한애국당원들이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참가 반대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위에서 언급된 자료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젊은 층의 대북 인식과 통일관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20대는 북한 주민에 대한 친밀감이 가장 낮았다. “북한과 가치관 차이를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33.7%로 다른 세대에 비해 10~30% 높게 나타났다.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20대(28.2%)와 30대(24.2%)에서 가장 높았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보고서는 “20대는 북한정권을 가장 불신하며 대북친밀감은 가장 낮은 세대”라며 “2030은 북한을 적대대상으로 인식하는 반면 4050은 협력대상으로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통일연구원 보고서는 “단일민족-단일국가 논리를 부정하는 비율이 20대는 47.2%, 30대는 44.1%에 달했다”며 “통일의 명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결과들이 말하는 의미는 명확하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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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정밀 조종유도체계를 도입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5월 3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박근혜정부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2030의 대북 인식과 통일관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이를 이해하는 열쇠는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북한 정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 지난해까지 북한의 행보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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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된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어 바지선으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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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23일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연평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인터넷과 모바일, 방송 기술의 발달도 한 요인이다. 격침당한 천안함이 수면위로 올라오는 순간, 연평도가 북한군의 포격으로 불바다가 되는 순간, 북한군이 DMZ에 매설한 지뢰가 폭발하는 순간을 담은 영상은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확산되며 국민들에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얼마나 크고 중대한 것인지 절감하게 했다. 북한이 수시로 내보내는 대남 위협 발언도 젊은 층의 반감을 부추기는 원인이 됐다.
◆추억팔이식 대북 정책, 국민 반발만 초래한다
젊은층의 대북 인식이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정부는 과거의 추억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이낙연 총리는 남북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언급하며 “그 대회에서 남북은 한반도기를 함께 쓰는 단일팀을 구성해 여자 단일팀 현정화-리분희 조가 중국을 이겼다. 그 때의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스포츠 단일팀이 사상 처음으로 결성된 이후 1991년 10월 4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이뤄졌고 같은해 12월 비핵화 선언을 담은 '남북 사이의 화해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는 등 남북 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북한은 강원도 강릉에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우리 장병과 민간인을 살싱했고 NLL에서 우리 해군 함정을 공격했다. 6.25 당시에도 평화를 유지했던 섬에 포격을 감행해 무고한 민간인까지 희생시켰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북한은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6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국제협력이 중시됐고, 이는 남북관계가 민족간의 문제라는 인식을 뒤흔들면서 통일과 국제 공조 간의 괴리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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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현지시간)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과 북한 참가에 대한 협의를 마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가운데)과 남북 대표단이 손을 맞잡고 있다. EPA 통신 |
이같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전략이다. 과거처럼 ‘한민족’이라는 개념만으로는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을 얻을 수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기 전의 대북 접근법도 국민들의 달라진 인식 하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박근혜정부의 ‘통일 대박론’같은 선언적 구호도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 통일세 등 통일과정에서의 경제적 부담 증가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남북 단일팀 같은 감성적인 정책은 남남 갈등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북한의 위협을 실감한 2030은 북한을 1990년대와는 다른 시각으로 인식한다. 북한과 북한 주민을 동포가 아닌 남 혹은 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나는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냉정한 자세로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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