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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백남준을 버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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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2 23:53:28 수정 : 2018-01-22 23: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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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TV·정보 고속도로 등 / 45년 전 이미 미래의 세상 예견 / 미래학자 영역 넘나든 백남준 / 그의 창조적 예지 되살려야 할 때 미국 장난감 전문 소매회사인 토이저러스(Toys R Us)가 지난해 9월 파산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조립식 장난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던 레고도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바비인형 제조사의 주가가 하락했다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원인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장난감 대신에 스마트폰에 나오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른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 보급이 활성화됐고, 4G의 통신속도는 언제 어디서나 동영상 시청을 가능케 했다. 장난감의 경쟁상대가 손안에 든 TV인 스마트폰일 줄은 단 한 사람을 빼고는 전문가도 예상하지 못했다.

1973년 백남준은 ‘최초의 휴대용 TV’라는 것을 만들었다. 주방에서 쓰는 강판에 TV 모니터 모형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당시는 TV가 무척이나 귀한 시절이었지만, 미래에는 사람들이 휴대용 TV를 들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TV, 곧 휴대전화의 원조이다. 지금 휴대전화와는 모양으로도 엄청난 거리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생각해 낸 개념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약 45년 전의 일이다.

이 해에 백남준은 영상을 이용해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라고 하는 최초의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발표한다. 우리말로 하면 ‘지구(地球)의 환희(歡喜)’, 혹은 ‘신나는 지구’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로큰롤이나 나바호 인디언의 북춤, 한국 여성의 부채춤, 젊은 여성의 탭 댄스 등 지구 곳곳에 있는 재미있는 춤이나 음악 등 신나는 요소를 모아서 서로 섞어 비교하며 약 30분 동안 보여주는, 일종의 종합오락영상이다. 이 영상의 앞부분에 백남준은 미래의 중요한 현상을 예언한다. “이것은 미래의 비디오의 지평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때 당신은 지구상의 모든 TV 방송국을 골라볼 수 있고, TV프로그램 안내책자는 맨해튼의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꺼울 것이다.”

백남준은 이때 이러한 영상 정보와 오락이 지구촌 전체에 대량으로 값싸게 공급돼야 한다고 함께 주장한다. 유럽공동시장처럼 비디오의 공동시장을 만들고 거기에서 각국이 만든 영상정보물이 무한정으로 교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러한 영상정보가 대량으로 유통될 수 있는 정보의 고속도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 그다음 해인 1974년이다. 21세기를 맞기 26년 전에 벌써 백남준은 오늘날의 인터넷이 있기 위해 꼭 필요한, 거대한 대용량의 정보교류채널을 인류가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처음 역설했다. 이 전자고속도로의 개념은 20년 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에 의해 정보화 고속도로 건설로 이어져 오늘날 지구 전체가 인터넷이란 거대한 정보의 유통을 통해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던 엄청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말하자면 현대문명사회의 초석을 그가 제시한 것이다. 이 정보혁명의 여파로 토이저러스 같은 전통적인 장난감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거기에 45년 전 미래를 내다보며 미리 준비하고 알려준 백남준의 예지력이 있었던 것이다.

흔히 백남준은 현대미디어 이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마셜 매클루언의 생각을 따라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매클루언이 TV를 통한 지구의 시공간 축소, 곧 지구촌이란 개념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구현하는 모든 가능성과 방법을 열어 보여준 사람은 백남준이다. 백남준은 쌍방향소통이야말로 사람들의 창조력이 가까워지고 꽃피우는 새로운 세상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역설했고, 그가 창조하고 이끌어온 비디오 아트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인터넷으로 간다고 이미 1995년에 말했다. 그만큼 그는 기술의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오늘날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통도구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바탕이 그에 의해 예견된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우리는 백남준을 미술가로 가둬놓고 있지만 그는 오히려 미디어예술가이자 미래학자로 되살아나야 한다. 기술로만 여겼던 TV를 예술의 수단, 혹은 방법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TV 수상기의 화면을 바꾸고 수상기를 조각의 재료로 쓴 것은 시각예술적인 측면이지만, 위성으로 나라와 나라를 연결해서 교류함으로써 인류가 더 재미있는 세상을 살며, 전쟁을 넘어서서 평화를 이 세계에 가져오자고 하는 것은 미술가가 아닌 미디어예술가의 영역이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전자세계로서 전자기술이 중요한 소통수단이 될 것이며, 예술이란 수단을 통해 각박한 현대문명에서 인간에게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미래학자의 영역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디어연구가들은 매클루언의 그늘로만 생각하기에 백남준을 버렸고, 미술에서는 TV 수상기로 만든 그의 작품이 점점 돈이 안 된다며 그를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며칠 후 29일이면 백남준이 세상을 뜬 지도 벌써 12년이다. 그동안 우리는 점차 그를 잊고 있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기에, 미래를 미리 보고 인간적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새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사자후를 잊어버려 우리가 점점 4차 산업혁명의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백남준의 미래를 내다보는 창조적 예지를 우리가 되살려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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