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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희망을!] "더는 좌절하기 싫어요" 타국살이 선택한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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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0 18:52:19 수정 : 2018-01-10 22: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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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채용문’ 해외 취업·창업으로 활짝 열다 / 코트라 워싱턴 무역관 근무 이한나씨 / 현지 대학 졸업 후 300여곳에 이력서 / “낮밤 바뀐 주재원보다 근무 여건 좋아”/ 中에 본사 둔 화동미디어 강민구 대표 / 자본·기술 없이 모바일 분야 맨손 창업 / 도산 위기 넘기고 4년 만에 매출 115억 / 도쿄서 IT社 근무 손성경·성효빈씨 / 손 “대학 ‘등급’보다 경력을 더 중시해” / 성 “야근 밥 먹듯 하던 근무 환경 탈출”
사상 최악의 취업난 탓에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는 한국 청년이 늘고 있다. 채용문이 꽉 막히면서 ‘헬조선’이란 자조까지 나오는 국내에서 벗어나 외국에서 취업과 창업 기회를 찾는 것이다. 낯선 이국땅에서 취업과 창업에 성공한 우리 청년들의 사례를 살펴봤다.

◆ “美선 주 40시간 근무… 행복감 높아졌죠” 코트라 워싱턴 무역관 근무 이한나씨

“한때 취업신분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정말 싫었어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한나(27·사진)씨는 “몇년 전 상황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이렇게 고백했다.

이한나씨
그녀는 9일(현지시간) “한국의 지인과 친인척이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내 취업시장에 빨려들어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그래서 체류신분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2014년 워싱턴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씨는 귀국 대신 미국 체류를 선택했다.

졸업 첫해엔 졸업생에게 부여되는 취업기회를 활용해 1년 동안 작은 업체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후가 문제였다. 취업비자 추첨에서 선택받지 못하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추방을 피하려면 다시 학생신분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시 등록하고, 300곳이 넘는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몇 군데 면접을 거쳐 일자리를 유지하다가 최근 코트라(KOTRA) 워싱턴 무역관에서 일하게 됐다.

이씨는 “몇 차례 회사를 옮기며 2∼3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행히 취업이 가능한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체류 자격을 갖추게 되니, 그간의 마음고생이 사라지고 한없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평일 할당된 1주일 40시간의 낮근무가 끝나면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시간이 있는 것도 고맙다고 했다. 자신과 회사에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하다가 선택한 게 백화점 아르바이트와 인터넷 쇼핑몰 운영이었다. 백화점 판매 아르바이트는 주말을 이용하고, 인터넷 쇼핑몰은 평일 회사 일을 끝내고 운영한다.

이씨는 “업체들의 현지 시장발굴과 수출지원을 돕는 일을 하면서 소비자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며 “소비자들은 다른 취향을 지닌 듯하면서도 놀랍게도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공통된 안목을 지녔다는 것을 현장에서 매번 접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미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마음먹기에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분배할 수 있다”며 “낮밤을 달리해서 일하는 주재원들에 비해 미국 현지에서 채용된 동료들이 더 행복해한다”고 알려줬다.

그녀는 “경험이 축적되면 나중에 사업을 할 것”이라며 “한국의 친구들에 비해 확실히 희망이 있다”고 웃어보였다.

한국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자신의 힘으로 미국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씨의 선택을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애초 국제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위해 중학교 시절 짧은 어학연수를 겸해 조기유학을 택했던 이씨의 미국 생활은 13년을 넘기고 있다. 상급학교 입학과 취업 시기에 간혹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려움을 극복한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는 게 이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 “혁신적 시각으로 中 바라보니 통하더라” 中에 본사 둔 화동미디어 강민구 대표

“자본은 물론 기술도 없이 맨손으로 창업했습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중국 시장을 본 게 도움이 됐습니다.”(화동미디어 강민구 대표·사진)

화동미디어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모바일 스타트업이다. 강 대표가 2013년 상하이 푸단대 친구들과 함께 창업했다. 중국 최초로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광고를 제공하는 앱인 머니락커 등을 개발한 업체다. 대학 동기 4명과 함께 창업, 직원수 150명에 지난해 매출 400억원을 기록했다.

강 대표는 푸단대 재학 중이던 2009년 한국에서 부친이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가족 생계를 책임지게 됐다. 중계무역을 했지만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던 중 한국 기업 락앤락이 상하이에 온라인 쇼핑몰을 내면서 그를 ‘한국관’ 관리자로 스카우트해 중국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강 대표는 “학교도 다시 다닐 수 있고, 대우도 좋아 결국 다시 중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화동미디어 강민구 대표
그가 창업을 결심한 것은 락앤락에서 일하던 2012년 서울에 출장 온 일이 계기가 됐다. 서울 지하철에서 모든 시민이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을 보고 중국에서도 ‘모바일 빅뱅’이 일어날 것을 직감했다.

“한국의 ‘모바일 현상’이 곧 중국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큰 흐름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모바일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강 대표는 대학 동기들에게 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하자고 설득해 4명과 함께 2013년 화동미디어를 만들었다.

창업 이후 우여곡절도 많았다. 퇴직금 등 3억여원을 투자했지만 1년 반 동안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초기 투자금을 다 소진하고 사업을 접을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침 삼성 스마트폰과 샤오미 휴대전화가 출시되면서 중국에 스마트폰 시장이 열렸다.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화동미디어도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능력 있는 모바일 앱 개발자를 찾기가 특히 어려웠다. “능력 있는 개발자는 우리를 찾지 않았고, 우리를 찾는 개발자는 불성실하고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실력 있는 앱 개발자를 찾기 위해 밤새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간 적도 있다. 칭화대 컴퓨터공학과 사무실에서 학생들에게 “엄청난 비전이 있다. 함께 세상을 바꾸자, 함께 상하이로 가자”고 설득했다. 지금 회사의 대표 개발자가 그때 만난 칭화대 학생이다.

“모바일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만으로는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중국 시장에 접근했고, 자본도 기술도 없었지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은 유능합니다. 새로운 방식을 앞세워 혁신적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면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 “고령화로 일손 부족한 日은 기회의 땅”  도쿄서  IT社 근무 손성경·성효빈씨

우리나라에 앞서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일본은 일손 부족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일자리가 구직자보다 많은 탓이다. 일자리가 부족해 걱정이 많은 한국과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일본의 취업시장이 한국 청년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큰 이유다.

지난해 11월 도쿄에 있는 한국계 정보기술(IT) 중소기업에 취업한 손성경(33·여·사진 왼쪽)씨는 한국에서 새 일자리를 알아보다 지인의 권유로 일본행을 결심했다. 호텔과 고급 브랜드 가방 매장에서 일했던 손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업무 환경도 열악해져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에서는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보다 어떤 학교 졸업장이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한때는 재수를 해서라도 유명 대학에 다녀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손씨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과 호주에서 일하며 일본어와 영어를 익혔고, 한국에서 일할 때 고객을 많이 상대한 경험을 인정받아 지금 회사에서는 영업 업무를 맡고 있다.

손성경씨
같은 시기 입사한 프로그래머 성효빈(31·오른쪽)씨는 서울에 있는 사립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4년 동안 배운 게 취업할 때 별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다.

팔에 장애가 있는 그는 장애인을 학원에 연결해 컴퓨터 관련 일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프로그래머가 됐다. 이후 한국에서 웹사이트를 구축·운영하는 조그마한 회사에 힘겹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야근을 밥 먹듯 하며 격무에 시달리다 지난해 헤드헌터를 통해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찾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들처럼 스스로 일본 취업에 나선 청년들도 있지만 정부 기관을 통해 취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성효빈씨
대표적인 것이 ‘케이무브‘(K-Move) 사업이다. 코트라(KOTRA)와 민간 업체의 구인·구직 매칭, IT 기업 맞춤형 연수 등의 프로그램이 매년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일본에 취업한 한국 청년은 2016년에만 1103명으로 전년(632명)보다 크게 늘었으며, 매년 증가 추세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일본 내 한국인 취업자는 4만8121명이며, 전문기술직(43.5%)과 IT(13.6%) 업종에 많이 분포돼 있다.

일본 취업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가 지난해 10월 일본 취업 한국인 1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8%가 현재 직장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무역협회 도쿄지부 관계자는 “해외취업을 인재유출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현재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이 해외에 나가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10여년 후 급격한 생산인력 감소가 현실화했을 때 이들 해외취업 인력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종현·베이징=이우승·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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