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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쌓이고 녹슬고…대형건물 앞 조형물 '흉물' 전락

입력 : 2018-01-07 20:30:06 수정 : 2018-01-07 22: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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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색맞추기식 공공미술품 ‘불협화음’ / 1만㎡ 이상 건물 의무설치 규정 / 먼지 쌓이고 군데군데 녹슬어 / 주변과 조화 못이뤄 미관 해쳐 / 화재 땐 소방차 접근도 어려워 / 예술성보다 비용에 맞춰 제작 / “설계 과정부터 함께 계획돼야”
“왜 건물 앞에 이런 조형물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울리지도 않고, 더럽고….”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빌딩 앞에 설치된 높이 3m가량의 조형물은 몹시 지저분했다. 관리가 되지 않아 새까만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조형물을 지지하는 대리석에는 담배꽁초와 종이컵이 수북했다. 누군가 침을 뱉은 듯 지저분한 얼룩도 묻어 있었다.

시민들과 예술의 접근도를 높이고 예술가 지원을 위해 대형건물에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공공미술품의 일부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관리가 엉망이거나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아 거리의 풍경을 해치고 보행에 불편을 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없느니만 못한 상태의 공공미술품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남구 역삼동의 한 건물 앞에 서 있는 높이 3m, 폭 2.5m의 조형물은 인도 위에 버티고 있어 행인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게다가 건물 입구와 인접해 있어 불이 날 경우 소방차의 접근이 어려워 보였다. 

중구 의주로에 있는 금속 재질의 조형물은 난해함으로 시민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두 개의 기둥 위에 맞물린 두 개의 바퀴를 표현한 이 조형물에 대해 박모(38)씨는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도 않고 작품설명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조형물이) 무슨 의미를 주는지도 모르겠다”며 “형식적으로 설치하니 저런 모습이 나오지 않느냐”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또 종로구 내수동의 한 건물 앞에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적처럼 무너져가는 기둥과 대들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는데 반짝이는 금속과 유리로 장식된 인근의 현대식 주거단지와 어울리지 않아 “생뚱맞아 보인다”는 게 주민들의 평가다. 
이 같은 공공미술품들은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설치됐다. 이 법은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비의 0.7% 이상의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시민들이 좀 더 예술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다. 이 법에 따라 설치된 공공미술품은 서울에 3700개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일부 건물주는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구색 맞추기에 급급하고 있다. 설치 비용을 단순한 세금으로 여겨 공공미술품이 주변 미관을 오히려 해치거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기도 하다. 일부는 브로커를 통해 비용에 맞춰 작품을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미술품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심의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건물 준공 막바지에 심의가 들어오면 준공일자에 맞추기 위해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승인율은 60∼70%에 달한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공공미술품을 심의, 관리하는 공공미술위원회를 출범시켜 상설기구로 격상시키고 위상을 대폭 강화했다. 과거에 순번으로 정하던 심의위원을 전문가 20명으로 구성하고 건축허가 단계부터 공공미술품의 작품성 등을 검토하도록 했다.

안규철 서울시 공공미술단장(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은 “대부분의 공공미술품이 건물의 장식품처럼 인식되다 보니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고 비슷한 작품들이 여기저기 생겨난다”며 “설치 및 준공검사가 끝나면 행정적 개입도 어려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안 단장은 “고만고만한 작품들을 늘어놓는 지금의 방식보다 건축설계 과정에서 함께 계획해 건물 주변 경관에 어울리게 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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