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옌, 랴오쥔, 이핑처, 왕샤오수 지음/신정근, 박만규, 서희정, 황미옥 옮김/성균관대학교출판부/6만원 |
베이징의 자금성과 만리장성, 상하이의 예원과 동방명주 타워, 시안의 병마용갱과 화청지, 항저우의 서호와 악왕묘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물과 유적이며 속 깊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를테면 불상을 보면 처음에는 돌덩어리에 인체 비례에 따라 부처를 새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몸을 감싸고 있는 얇은 옷자락이 보인다. 얇은 옷을 두른 불상이 심미적으로 다가온다. 종이나 밀가루도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솜씨가 탁월하다.
중국 베이징 복판에 있는 자금성과 주변 전각들의 모습이다. 자금성의 건축 양식은 고대시절부터 동아시아 각국에 표준 양식으로 전파되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산둥대학 부총장이 책임편집을 맡은 ‘중국심미문화간사(中國審美文化簡史)’(중국고등교육출판사·2007)를 번역한 이 책은 동아시아 문명사를 통시적으로 이해하는 책이다. 1000여쪽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4명의 중국인 전문가가 집필한 4권의 저서를 한 권으로 축약했다. 각각 선진권, 진한위진남북조권, 당송권, 원명청권 등이다. 시대별 문화 특성과 추이를 콕콕 집어주면서 전체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여타 문화 서적과 다른 이 책만의 장점은 사실에 대한 고증과 출처를 밝힌 점이다. 연구서나 논문에도 인용할 만한 신뢰성을 갖고 있다. 책에 인용된 원전을 일일이 확인해 출처를 밝혔으며 원서에 없던 1000여개의 주석도 별도로 달았다.
산 정상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만리장성의 모습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시대를 노래한 대가들을 음률을 통해 시대별 문화의 특징도 엿볼 수 있다.
선사 시대의 생식과 영웅신, 은나라의 숭신상력, 주나라의 숭문상실, 진한 제국의 문화(大美), 동한 시대의 숭실(崇實), 북송의 인문(人文), 청 제국의 전아(典雅) 등 특정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를 이해할 수 있다. 이 키워드들은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는 열쇠들이다. 나아가 아시아 문화의 원류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중국과 한국의 서로 비슷한 지명은 상상 이상으로 문화의 교류가 대단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때는 역시 당제국 시대다. 시가부터 건축까지 완벽한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다양한 유파의 형성과 함께 거장들이 출현했던 시기다. 특히 고구려와 당의 교류는 상상 이상으로 밀접했다. 당과 아시아 각국의 교류는 근·현대보다 옛 시절이 더 활발했다.
번역을 감수한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는 “오늘날 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날로 깊어지면서 동아시아의 정체성은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동아시아 고전을 철학 사상 일변도의 연구 풍토에서 미학과 예술의 관점으로 옮겨 재조명한다면 아시아 문화 연구 영역을 다양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신 교수는 특히 “서양의 시각에서 왜곡되고 변형되지 않은 채 한국학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타자의 시선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소극적 변명보다 적극적 자기 규정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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