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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한 사람을 막다른 길로 몰고가는가

입력 : 2017-12-23 04:00:00 수정 : 2017-12-22 18: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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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사회학 / 마르치오 바르발리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2만9800원 / 자살은 사회적 통합·규제서 비롯 / 뒤르켐의 이론 한계에 봉착 / 자살테러 등 ‘무기로서의 자살’ / 개인 의도 넘어 댜양한 양상으로 / 정치·종교적 요인까지 두루 살펴 최근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사망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소속사 측은 “해당 멤버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밝힌 가운데 극단적 선택에 대한 경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망인이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나는 인도의 의식 ‘사티’. 플랑드르 화가 발타자르 솔빈스가 1796년 인도 콜카타에서 제작한 판화다. 글항아리 제공
학계에서는 인간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이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사회통합의 정도에 따라 개인이 소외받거나 집단으로부터 매몰당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뒤르켐의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종속이 약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이 소외받는 현상이 두드러져 ‘이기적 자살’이 증가한다.

그러나 뒤르켐의 이론을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마르치오 바르발리는 ‘이기적 자살’보다 ‘이타적 자살’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20세기의 마지막 40년 동안 자살 테러범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이타적 자살이 등장했고, 서유럽의 자살률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바르발리는 신간 ‘자살의 사회학’에서 뒤르켐의 이론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자살론을 제시한다.

바르발리는 자살의 원인이 사회가 아닌 개인의 의도에 있다고 본다. 그는 자살의 유형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공격적 자살’ ‘무기로서의 자살’로 분류한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은 뒤르켐의 이론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그 원인이 사회가 아닌 ‘개인’의 의도에 있다고 본다. 이기적 자살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나 질병, 파산 등 여러 이유로 고통을 끝내기 위해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목숨을 끊는 것이다. 반면 이타적 자살은 누군가를 위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그 길을 따르는 의식인 ‘시티’와 중국 여성들이 정절을 지키려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공격적 자살과 무기로서의 자살은 자살을 보복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자살이 공격적 자살이라면, 일본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나 자살 테러범의 죽음은 무기로서의 자살로 분류된다.

바르발리의 자살 유형에는 뒤르켐이 주장한 사회적 요인이 작용하지만 책은 정신의학적, 심리적, 문화적 요인까지 살핀다. 특히 종교는 큰 영향을 준다.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은 신앙을 버리기보다 죽음을 택했다. 이후에는 기독교가 자살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면서 유럽에서의 자살률이 줄어들었다. 중국 불교의 교리 문답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군주에 대한 충·효·정절·정의·전쟁’에 의한 선택은 정당화하기도 했다. 

자살에 대한 책임 추궁도 차이를 보인다. 서구에서는 ‘왜’에 초점을 맞춰 자살 이유를 찾았다면 중국에서는 ‘누가 이 지경으로 몰고 갔는가’에 중점을 뒀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복수를 목적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많았다.

정치적 요인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집단이나 사람들이 자살을 일종의 무기로 활용했다. 분신자살은 정치적·종교적 적수에 대항하는 집단적 항의수단으로 지금도 이용되고 있고, 헤즈볼라에서 시작된 자살공격도 여기에 해당한다.

저자는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이타적 자살의 중요성이 높아진 현상도, 서유럽에서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 현상도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변화로 설명되지 않는다”면서 “사회적 통합과 규제라는 두 원인만 검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오직 두 원인만을 바탕으로 분류한 자살의 유형을 계속 이용해서도 안 된다”고 피력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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