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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고발 하나둘씩 더 쌓이고
응원과 격려 쏟아질수록
가혹한 현실 향한 두려움 줄고
양심의 목소리와 행동 커진다
또 한 해가 저문다. 송구영신이 새삼스러울 게 없는데도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다. 지나간 어제는 아쉽지만 다가올 내일이 있어 위안이 된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그런 희망을 잃지 않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 적지 않다. 12월 20일 대통령선거일을 7개월가량 앞당긴 국민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무술년을 맞아 소망과 성취를 기원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새해 소망을 빌고 결실을 거둘 자격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특히 머리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가 연말에 즈음해 잇따라 열렸다. 그들이 이루어낸 것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초라한 잔칫상이지만 그들의 이름 석자, 그들이 한 일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기억하자는 뜻을 담았다.

김기홍 논설위원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를 세상에 알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의 ‘제1회 이문옥 밝은 사회상’과 호루라기재단의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다. 최순실의 비리를 언론에 최초 제보한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과 부인 이정숙씨, 아들 의겸씨는 참여연대가 주는 ‘의인상’을 수상했다. 최순실의 비리 증거를 수집해 검찰과 국회의원에게 제보하고 국회 청문회 증언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 규명에 앞장선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투명성기구가 수여하는 투명사회상을 탔다.

김광호 전 현대자동차 부장은 현대차 엔진 결함과 리콜 미실시 등을 국토교통부·국민권익위원회·미국 교통부 등에 신고해 의인상과 투명사회상을 함께 받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주지부의 보조금 부정청탁과 횡령사실을 경찰 등에 제보한 김은숙씨는 의인상과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수상했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는 검찰 조직 내의 불합리한 문제와 부조리를 지속적으로 지적한 공로로, 이종헌 LG팜한농 공익제보자는 회사의 산업재해 은폐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에 신고한 공로로 각각 ‘이문옥 밝은 사회상’ 시상대에 섰다.

자신이 다니던 정유회사에서 해상 벙커C유를 불법 유통한다는 사실을 국세청·경찰 등에 신고한 신인술씨,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의 치매노인 폭행 및 은폐를 언론에 알린 이명윤씨는 참여연대 의인상을 받았다. 서울 서대문구 재개발구역의 비리사건 수사방해를 폭로한 최용갑 마포경찰서 수사관은 투명사회상을 받았다. 신세계 이마트의 직원 불법사찰과 노조탄압, 불법파견 등을 고발한 안성익씨, 서울미술고 회계비리를 제보한 정미현씨도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수상했다.

중증외상 치료의 중요성을 알린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는 환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상을 받았다. 가혹한 환경과 주변의 질시를 이겨내며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실정을 세상에 알려 국민적 관심과 정부 지원을 이끌어낸 공이 크다.

세상에는 살아본 삶과 살아보지 않은 삶, 두 종류의 삶이 있다. 살아보지 않은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을 포기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양심의 문을 열고 가시밭길을 걷기로 한 것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로 치부될 일이 아니다.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할 용기이고 깨어 있는 의식이고 굳은 신념이다.

공익신고자들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그들이 치르는 고통이 너무 크다. 제보 이후 마주치는 현실은 가혹하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지옥의 문을 열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생계를 위협하는 해고와 무더기 소송을 막고 보상을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한 번의 혁명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듯이 한 번의 용기로 깨끗하고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 내부 고발이 하나둘씩 더 쌓이고 응원과 격려가 모아질수록 두려움은 줄어들고 양심의 목소리와 행동은 커진다.

부정부패를 적발하고 예방하는 것, 호루라기로 우리 사회의 위험 신호를 알리는 양심의 파수꾼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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