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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8번째 시집 ‘꽃 밟을 일을 …’ 펴내
“한 처녀를 안고서/ 달리아 꽃을 낳던 여름날을 회상하면서/ 모닥불을 피운다/ 숨죽여 옮겨붙는/ 섬과 허벅지, 새들의 지저귐/ 천둥소리를 잡으러 가는 사냥꾼처럼/ 자꾸만 헛기침을 만들어 모닥불에 바친다/ 커지려는 불을 다독이는 것이/ 일생의 공부가 되리라만 이내/ 밤은 너무 큰 어둠을 가져온다”

읽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관능적인, 장석남(52∙사진)의 여덟 번째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에 실린 ‘모닥불’이라는 시다. 새들의 지저귐과 천둥소리와 섬과 커지려는 불로 이어지는 뜨거운 묘사다. 과연 장석남의 노래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운명적으로 더 되돌아보려는 시간이 많았고 그런 장면들이 더 많은 게 이전 시집과 다른 점이 아닐까,” 숙취에서 갓 깨어난 목소리로 답했다. 관능조차 이미 고대의 것이라면 이승은 이제 무엇으로 견딜까.

“현관에 벚꽃 잎들 날려오니 자주 와서 꽃을 쓰는 노파여/ 꽃을 쓸어 깨끗이 하려는가?/ 하늘을 쓰는 노파여/ 옛날을 쓰는 노파여/ 꽃 쓸어 감추는 노파여/ 얼결에 마침 노을도 쓸어내는 노파여/ 꽃을 쓸어 밤을 맞는 노파여/ 꽃에게 이기지 못할 노파여”(‘꽃을 쓰는 노파여’)

장석남은 그 허무를 ‘꽃에게 이기지 못할 노파’에게 들씌우더니 다시 ‘낙엽을 쓰는 노파여’에 덧씌웠다. “11월의 아침을 쓰는 노파여/ 저녁을 쓰는 노파여/ 낙엽을 이기려는가?/ 낙엽 쓰는 이 없는 그 어느날을 내게 주시려는가?/ 고요의 그 어느날을 어쩌시려는가?/ 나뭇가지 사이 젖어가는 하늘이나 한꺼번에 보이시려는가?/ 어머니여,/ 비질 소리가 노래로다/ 서럽게 서럽게 멀어지는 노래로다”

어머니여, 라는 외침이 느닷없다. 다 늙어 엄마를 부른들 낙엽을 이기겠는가. 장석남은 표제시로 인용한 ‘입춘 부근’에 “오는 봄/ 꽃 밞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라고 썼다. 살아야 하는데, 사는 게 죄 짓는 일이라는 한숨. 장석남의 시들이 그렇지만, 이번 시집의 시들은 새삼 깊다. 전화를 끊은 뒤 그가 보내준 멋진 말. ‘고대는 미래의 다른 이름! 울음이 모든 말들의 어머니이듯!’

“얼굴엔 비가 온다/ 입술같이 아궁이에 불이 모여서 타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 처마의 바람 노래/ 소금 가마니를 지키라고 끝마치지 않는다// 내세의 이야길 슬어놓은 듯/ 흰 그릇에 그득하니 물 떠놓고/ 떠나온 그곳”(‘고대古代에서’)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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