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번 실험 이후 등장한 북한의 발언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발사실험 직후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의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이 완수됐다는 주장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화성 15형’ 미사일의 과학적 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않다. 탄두 무게 경량화의 문제는 물론 핵심적 논쟁의 하나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 역시 우리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의 군사전문가들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주장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단언키는 어렵지만, 서두름의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 정치학 |
북한의 도발이 이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전 일이고 한반도 위기의 굴곡이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 정부의 자율성은 설 땅을 찾기가 어렵다. 문재인정부가 잘할 수 있는 ‘평화 노력’ 역시 좀처럼 추진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 무력 완성 주장의 배경에는 이처럼 복잡한 사정이 있음이 분명하다면, 이럴 때일수록 북핵 문제 앞에서 우리의 자세는 더욱 결연해져야 할 것이다.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얘기가 다시 불거지는 듯한 양상이다. 혹시라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에 변화가 생긴다면 북핵 문제에 중심을 잡아야 할 주체는 바로 우리 정부이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는 한 남한 주도의 통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 국민이 미래 언젠가의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갈구하고 있다면, 비핵화가 전제가 되지 않은 대화를 위해서는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상세한 외신의 보도도 있었지만, 북한은 올 초부터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매우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만에 하나라도 ICBM 위협을 제거하고 현재의 핵 능력 수준에서 무력을 동결시키는 방향으로 북·미회담이 전개된다면 이는 우리의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위기의 파도가 높을수록 우리 스스로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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